사상 첫 700만 관중 시대를 연 프로야구의 축제 뒷맛이 개운치 않다. 3월 열리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의 돌아가는 꼴을 보면 "팬들 덕분"이라며 고개 숙였던 인사는 공치사였나 싶다.
3회 WBC에 참가할 국가대표팀이 구성 단계부터 난항을 겪고 있다. 명단을 발표하기 무섭게 불참하겠다는 선수가 나오고 있다. 류현진(LA다저스), 김광현(SK), 봉중근(LG)이 메이저리그 적응과 부상을 이유로 태극마크를 반납했다. 김진우(KIA)가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더니 추신수(신시내티)도 불참 의사를 밝혔다.
최적의 조합 찾기에 집중해야 할 대표팀은 대체 선수를 찾는 데 아까운 시간을 쓰고 있다. 이대로라면 기대보다 우려가 더 큰 게 지금의 분위기다.
WBC는 올림픽도 월드컵도, 아시안게임도 비켜간 2013년 계사년(癸巳年), 국민이 기대하는 스포츠 빅 이벤트다. 더욱이 2월 25일 박근혜 당선인의 취임식이 있으니, WBC는 새 정부 들어 처음 열리는 국제대회라는 상징적 의미까지 지니고 있다.
우리는 WBC에 좋은 기억이 있다.
지난 2006년 세계 야구의 열강들이 최정예 멤버로 출전한 제1회 대회 때 한국은 4강 진출의 쾌거를 이루며 한반도를 열광시켰다. 해외파와 국내파 선수들이 애국심으로 똘똘 뭉쳐 싸웠기 때문이었다.
2009년 2회 때는 해외파의 잇단 불참 선언에 우려로 출발했으나 준우승이라는 또 한 번의 값진 성과를 일궈냈다. 한국이 일본을 꺾고 4강 진출을 확정했을 때 서재응이 에인절스 스타디움 마운드 위에 태극기를 꽂는 장면을 보면서 온 국민은 다시 열광했다. 선수도, 국민도 그 순간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외치며 감격을 만끽했다.
두 차례 WBC에서의 호성적은 감소하던 프로야구 관객 추이를 되돌려 놓았고, 대망의 700만 관중 시대를 여는 기폭제가 됐다. 더는 한국야구가 세계무대에서 뒤처지지 않는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야구팬들은 한국야구 수준에 아무런 의심 없이 야구장을 찾았다.
지난해 700만 관중 시대와 10구단 창단 결정이라는 쾌거도 잠시, 3회 WBC를 준비하는 대표팀의 사정은 딱하다 못해 서글프다.
공공연히 출전 의사를 밝히고, 물밑 신경전까지 벌였던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때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분위기다.
이유는 분명하다. 아시안게임과 달리 WBC는 좋은 성적을 낸다고 해도 병역 혜택이 없다. 상금과 대회 참가에 따른 배당금만으론 선수들이 바라는 당근이 되지 못한다. 결국, 먹을 게 없는 잔치다 보니 '태극마크'라는 초청장이 반가울 리 없다.
잇단 선수 이탈을 보면서 팬들은 선수나 구단이 일부러 대표팀에서 빠지려는 술수를 쓰고 있다고 눈을 흘긴다. "국가대표로 뽑혀 국위 선양하는 건 큰 영광인데, 젊은 선수들이 이를 너무 가볍게 여긴다"고 불쾌해하는 팬들도 많다. 한편에선 프로화된 선수들에게 더는 애국심 운운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참에 언제든 최상의 멤버를 뽑을 수 있는 대표팀 제도와 보험, 연금 등의 선수 보상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어쨌든 이번 WBC 대표팀 구성을 보면서 프로야구 관중몰이에 큰 이바지를 했던 WBC가 '계륵' 신세가 돼 버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10구단 창단 등과 맞물려 또 다른 도약이 필요한 시점에서 WBC는 양날의 칼처럼 보인다. 좋은 성적을 거두면 1천만 시대를 이끄는 징검다리가 되겠지만 그렇지 못할 땐 애써 데워놓은 열기마저 식혀버리는 부메랑이 될지 모른다. 선수를 비롯한 야구인들이 새기고 풀어야 할 숙제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