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그저 어제의 다음 날일 뿐, 해가 바뀐다는 게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 지도 오랜 듯하다. 다만, 이맘때면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에는' 하는 다짐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새삼스레 내가 보낸 한 해를 돌아보게 된다. 늘 느끼는 거지만, 참 정신없이 고단하게 살아온 한 해였구나 싶다. 현대인은 누구나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살아가는 것 같다. 직장인도 전업주부도 심지어 학생들도 누구나 매일 매일의 일상을 고단해하며 살아간다. 세상은 점점 좋아진다는데 왜 우리들의 삶은 점점 힘들어지는 걸까? 필자도 언제부턴가 '일주일만 어디로든 떠나서 아무것도 안 하고 지내다 왔으면' 하고 바라고 하루하루를 살아왔다.
복잡해진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많은 스트레스 속에 살아가고 있고, 이는 만병의 근원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발표 자료에 의하면 최근 5년간 우울증 같은 기분장애 환자가 인구 10만 명당 2006년 959명에서 2010년 1천81명으로 12.7% 증가하였으며, 스트레스로 말미암은 우울증을 평생 한 번이라도 겪어본 사람이 전체 인구의 약 5.6%, 그리고 현재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은 전 국민의 2.5%인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정신 건강의 중요성이 주목받게 되는 이유이다.
지난 한 해, 우리 사회를 지배했던 키워드 중의 하나가 '힐링'이었다. 여기저기서 힐링을 접두어로 한 새로운 단어들이 넘쳐났으며, 누구나 '힐링이 필요해'를 외쳐댔다. 그동안 '빠름 빠름'으로 성공 가도를 달려온 우리마저도 그 '빠름'에 지쳐버린 게 아닐까. 빠르게만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사람들은 '힐링'이 필요했던 것이다. 여기서 등장한 새로운 형태의 관광이 '힐링 투어리즘'이다. 여행을 통한 몸과 마음의 치유를 의미하는 '힐링 투어리즘'은 '쉬고 싶은' 현대인들이 여행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휴식과 위안을 얻음으로써 재충전하는 방법이다.
그러고 보면 불과 몇 년 사이에 관광에 대한 인식이 참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관광이라고 하면 여행사 직원의 인솔에 따라 단체로 비행기를 타고 관광버스에 올라 누구에게나 알려진 유명 관광지를 짧은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이 보고 그 앞에서 반드시 인증 샷을 찍어 주어야 하는 피곤하고 고단한 여정이었다면, 지금은 많은 사람이 휴식과 위안을 얻기 위한 '힐링'을 목적으로 여행하고 있다. 이는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쉬기 위한' 여행이며, 오롯이 '나를 위한' 재충전의 여행인 것이다. 레저 트렌드가 '가족형 웰빙'에서 '나 홀로 힐링'으로 바뀌고 있고, 위안과 휴식을 통한 '힐링'이 레저 시간을 보내는 주요 목적이 되고 있다.
'나 홀로 여행'에서는 멋있는 풍경을 볼 때마다 내 감탄에 맞장구쳐 줄 사람이 없어 외롭고, 사진은 언제나 셀카여야만 한다는 사실이 아쉽긴 하다. 하지만, 혼자 여행을 떠나게 되면 평소 하지 않던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하고 싶은 것, 해야 할 것들을 차분하게 정리하면서 내 시간을 즐길 수 있다. 지나가다 보이는 아무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책을 읽거나 지인에게 엽서를 쓰는 것은 나 홀로 여행의 진정한 로망이다. '혼자만의 여행'은 특히 결혼 후 남편과 아이에게 선택의 우선순위를 빼앗기고 사는 여자들에게는 더 간절한 위시리스트 중의 한 항목일 것이다. 누군가를 돌보아야 하는 시간에서 벗어나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나 자신과 대화를 나눈다는 것, 정신없이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지나온 시간을 되새겨 볼 수 있다는 것은 나 홀로 여행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미국의 시인이자 수필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에 따르면, 대부분 시간을 혼자 지내는 것이 심신에 좋으며, 고독이라는 벗을 깊이 사귀는 일이 잘 사는 삶이라고 하였다. 소로처럼 월든 호숫가 숲 속에 통나무집을 짓고 살 수 없는 현실이지만 가끔 '물살 거친 강 같은 현실'이 너무 고단하게 느껴질 때 혼자만의 힐링 여행을 떠나 보는 건 어떨까? 혼자 여행하지만 외롭거나 쓸쓸하지 않은, 당당하고 즐거운 여정이 될 것이다.
김미경 대구가톨릭대 교수 호텔경영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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