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1인당 국민소득이 50달러에 못 미치는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이제는 원조를 베푸는 나라로 발전하게 된 것은 5천 년 동안 대물림한 가난을 몰아낸 새마을운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청도군 신도마을에서는 정부 주도의 새마을 사업을 시행하기 전인 1957년부터 자연부락인 신기마을과 도곡마을을 잇는 농로 2.5km 개설을 자력으로 추진, 신도마을로 통합하였다. 이어 1959~1967년에는 재래식 부엌을 개량하고 야산을 개간해 유실수를 심었으며, 농한기 부업을 장려했고 절미저축운동과 공동구판장 운영 등으로 호당 1통장 갖기 운동을 전개했으며, 초가지붕을 기와지붕으로 개량하고, 주민들이 철도청과 협의하여 자력으로 신거역을 개통하기도 했다. 이는 1967년 당시, 마을의 이장이었던 이인우 씨의 '새마을 사업 융자내역'에 마을 안길을 넓히고 지붕과 담장 개량 사업을 진행했던 상세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새마을운동은 1970년 4월 22일 박정희 대통령이 전국 지방장관 회의에서 청도의 신도마을을 본보기로 새마을 가꾸기 사업을 지시하여 오늘날 세계가 주목하는 역사적인 새마을운동이 태동하게 되었다. 이로써 신도마을은 명실상부한 새마을운동의 발상지로 당시 전국의 많은 새마을지도자들의 견학 및 교육 장소로 널리 알려져 새마을운동의 바람은 요원의 불길처럼 전국으로 번져 나갔다.
1972년, 운문면 방음리(지도자 홍영기)가 새마을 사업 선진마을로 지정되어 그해 3월 24일 박정희 대통령이 시찰했고, 같은 해 6월 1일은 김종필 국무총리가 각북면 덕촌리 새마을 사업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또한 풍각면 차산리 홍영매, 각남면 옥산리 곽영화 씨 등 걸출한 여성 새마을 지도자를 배출하였으며, 새마을운동 성공사례를 전국의 새마을지도자, 각 기관, 사업체 등의 순회강연으로 이어졌으며 영화'드라마 등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이처럼 청도군의 새마을운동의 역사는 특별하다. 1980년대 전국 대부분의 자치단체에서 새마을과를 통폐합시켰음에도 청도군에서는 현재까지 새마을과를 존치, 21세기 지속 가능한 새마을운동으로 계승'발전시켜 나가고 있으며, 1985년 12월에는 신도마을에 새마을운동 발상지 기념탑을 설치해 새마을운동 발상지로서 자긍심을 지켜왔다. 마침내 2011년에는 4월 22일이 새마을의 날로 지정되었고, 그해 8월 27일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아 신도마을에 새마을운동 발상지 성역화 사업을 준공했고 새마을운동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방문 모습 동상과 대통령 전용열차를 재현했다.
2011년 8월 27일, 새마을운동 발상지 성역화 사업 준공식에 참석한 제18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새마을운동은 정신혁명이었습니다. 동기가 부여된 우리 마음의 변화가 얼마나 큰 역사를 이루게 되는지 다시금 생각해보는 오늘입니다"라는 방문록을 남기며 조국 근대화의 원동력이 되었던 새마을운동의 역사성과 진정성을 회고하였다.
청도군은 이를 바탕으로 새마을운동의 실천적 전략으로 작년 5월 16일 정부로부터 새마을정신을 근간으로 한 '청도 우리정신 글로벌화 교육특구'로 지정받아 근면'자조'협동의 3대 정신에서 더 나아가 나눔'봉사'창조의 의식 개혁과 생활 실천 운동으로 새마을운동을 세계화하는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세계가 한국의 성장 발전을 주목하고 있고 그 중심에 새마을운동이 있음을 주목하고 있다. 이제 새마을운동은 우리 대한민국의 대표 브랜드이다.
새마을운동 발상지와, 새마을운동을 제창한 박정희 대통령의 탄생 도시, 그리고 새마을운동을 각 분야별 직능별로 특성화해 성공한 사례 도시 간의 통합적인 네트워크 구축을 통한 상호 유기적인 협력 체계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시기다.
이중근 청도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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