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4일 오후 대구 달성군 한국델파이 본사 회의실. 컴퓨터를 통해 원산지관리 시스템에 접속하자 정면의 대형화면에 원산지확인서 내용이 떴다. 한 품목을 클릭하자 오른쪽 '공급물품 명세서' 화면에 10여 개 관련 물품의 HS코드와 FTA 코드, 결정기준 등이 나왔다.
한국델파이 이동억 차장은 "지난 3년간 원산지증명 시스템 구축을 위해 밤낮없이 일했다"며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계속해서 도전한 결과 우리 스스로 시스템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대구지역 기업들이 FTA에 대한 관심은 높지만 원산지증명 및 관련 시스템 구축에 드는 비용과 시간, 인력 때문에 투자를 망설이고 있다.
◆일찍 준비하면 '득'이 된다
한국델파이가 FTA를 준비하기 시작한 것은 2010년 9월이다. 이 차장은 "2008년 12월 한국지엠에서 FTA 관리를 시작했지만 우리 회사는 당시 FTA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며 "2009년 태국지사에서 원산지증명 발급을 요구하면서 FTA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한국델파이는 2010년 외부컨설팅을 통한 시스템 구축을 시도했다. 회사 관계자는 "당시 외부컨설팅 비용이 무려 4억원에 달했고 유지보수비도 매년 1천만원이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다"며 "선뜻 투자를 결정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회사는 원산지관리 시스템을 직접 제작하기로 했다. 2010년 12월 선진 사례 벤치마킹을 시작해 2011년 6월 원산지 기본정보 및 판정, 포괄확인서 발행기능을 추가한 시스템을 자체적으로 개발했다. 마침내 2011년 9월 1차 개발을 완료했지만 협력업체의 자료가 없어 바로 시스템을 가동하지 못했다. 지난해 한미 FTA 협정 내용을 추가한 데 이어 9월 협력업체 포괄확인서 업로드 기능이 시스템에 탑재되면서 본격적으로 FTA 원산지증명을 시작했다.
한국델파이가 자체 원산지증명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있어 가장 어려웠던 점은 협력업체의 자료 파악이었다. 이 차장은 "우리는 1차협력업체만 300여 곳이다. 이 때문에 시스템을 구축할 때 협력업체들이 손쉽게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회사는 2010년부터 연 2회씩 협력업체와 원산지증명 교육을 받았을 뿐 아니라 협력업체 직원을 따로 불러 자체 교육을 하기도 했다.
회사 관계자는 "지난해 매출 1조1천860여억원 중 직접적인 해외 수출만 3천450여억원에 달한다"며 "간접수출까지 포함하면 매출의 70%를 차지할 정도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회사는 올해 FTA 대응을 위해 3천여 품목의 포괄증명서를 이미 발급했다. 또 올해 터키와의 FTA 타결이 예상되면서 터키의 원산지결정기준도 시스템에 미리 입력해뒀다.
◆늦기 전에 시작해야
한국델파이 윤경호 총무팀장은 "원산지증명을 확실히 하면 가격경쟁력이 되는 것은 확실하다"며 "우리가 준비되면 수입업자는 곧바로 세금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수출뿐 아니라 수입에서도 한국델파이는 2012년 FTA를 통한 원자재 수입으로 19억원의 관세 혜택을 보는 등 FTA 효과를 누리고 있다.
자체적으로 원산지관리 시스템을 구축해낸 한국델파이는 다른 중소기업에도 원산지증명은 의지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 차장은 "우리는 불필요한 기능을 없애고 고객사와 우리 회사, 협력업체에 꼭 필요한 기능만 담았다"며 "이 때문에 사용이 간편할 뿐 아니라 개발 비용도 서버 구입자금밖에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히려 규모가 작은 기업일수록 처음 원산지확인 과정을 제대로 구축하기 쉽다고 설명했다. 이 차장은 "품목이 몇 개 되지 않는 소규모 업체들은 정부의 'FTA PASS'만 활용해도 충분하다"며 "기본적으로 자신이 생산하는 제품의 HS코드를 정확히 파악하기만 해도 50% 이상은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원산지증명이 양날의 검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원산지증명에 오류가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 수입업자는 그동안의 관세혜택을 모두 추징당할 뿐 아니라 과징금까지 납부해야 하며 만약 수입업자가 원산지 증명에서 오류를 범한 수출자에게 손해배상을 요구하게 되면 수출업자는 피해를 그대로 입을 수밖에 없다
또 원산지 사후검증 요구에 따른 대응도 주문했다. 이 차장은 "지난해 8월 체코에서 2가지 품목에 대해 원산지검증을 요구했는데 이 2개 품목에 대해서만 4개월 가까이 서류를 확인하고 준비해야 했다"며 "중소기업이 원산지증명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품목 하나 증명하는 데에도 엄청난 인력이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국델파이는 협력업체와의 지속적인 교육과 관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1차협력업체뿐 아니라 2차협력업체도 원산지확인을 제대로 해줘야 하기 때문. 윤 팀장은 "무엇보다 협력업체 경영자의 마인드를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며 "직접적인 실익이 없는 협력업체들이 원산지확인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가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경석기자 nk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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