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생각만 해도 끔찍하고 우울하다. 새해 벽두라서 더욱 그렇다. 그렇다고 외면할 수도 없다. 그래서 죽음과의 '즐거운 동거'가 필요하고 죽기 전에 원 없이 세상을 살아보는 것도 필요하다. 최근 웰빙'웰다잉 바람까지 이어지면서 '버킷 리스트'(bucket list)를 작성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버킷 리스트란 '죽기 전에 꼭 해 보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으로 '죽다'라는 뜻으로 쓰이는 속어인 '킥 더 버킷'(kick the bucket)에서 유래했다. 2007년 죽음을 앞둔 두 남자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의 리스트를 만들어 실행한다는 내용을 담은 미국 영화 'the Bucket List'가 상영되면서 널리 알려졌다. 지난해에는 SBS 주말드라마 '여인의 향기'에서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 이연재(김선아)가 버킷 리스트를 작성하며 남은 인생을 준비하는 모습이 그려져 시청자들로부터 공감을 얻기도 했다.
◆히말라야 등정·월급봉투·아내에게 편지…
직장인 김성수(40) 씨는 7일 네팔 여행을 떠났다. 히말라야 산 등정에 도전하기 위해서다. 4,130m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에 오르는 것이 목표다. 사랑곶에 올라 피시테일(물고기 꼬리)도 감상할 작정이다. 히말라야 등정은 새해를 맞아 그가 작성한 버킷 리스트 중 하나다. 김 씨는 "올해로 마흔이다. 야구로 치면 5회에 접어든 셈이다.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히말라야에 올라 지금껏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보고 인생 2막을 위한 각오를 다지고 올 작정이다. 더 이상 나이가 들면 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새해 큰 마음을 먹었다"고 했다.
김 씨처럼 새해 벽두부터 버킷 리스트를 작성해 실행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올해의 계획과 함께 버킷 리스트를 작성하며 하나하나 실천에 나서고 있는 것. 때로는 황당하기도 한 내용도 있지만 리스트를 만들면서 '자신이 누구이며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답해보며 지난 세월을 뒤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있다.
경북대 도서관에서 만난 이정훈(26) 씨는 "지난해 봄에 졸업했는데 아직 백수다. 죽기 전까지는 모르겠고 하루빨리 취업에 성공해 꼬박꼬박 월급봉투 받아보고 퇴직금까지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부 강모(34) 씨는 "쥐꼬리만 한 봉급으로 살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죽기 전에 원 없이 돈을 써보는 것이 소원이다. 쇼핑도 마음껏 해보고 남편'자식들과 함께 럭셔리한 세계 일주 여행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실현 가능성을 떠나 다소 황당한 희망을 피력하는 사람도 있었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이정훈(42) 씨는 "강원랜드에서 대박을 터뜨렸으면 좋겠다"고 했고 자영업자인 강신형(42) 씨는 "죽기 전에 주식으로 떼돈을 벌고 싶다"고 했다.
온라인에서도 여러 버킷 리스트 실행모임이 활발하다. 회원 수 6천900여 명을 자랑하는 네이버의 한 카페 회원들은 일정에 맞춰 사격, 암벽등반, 패러글라이딩 등 버킷 리스트를 작성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고 있다. 레포츠뿐 아니라 독특한 활동도 눈에 띈다. 카페 회원 이모 씨는 '10년 전 헤어진 애인 다시 만나기' 등을 올해 버킷 리스트로 꼽았다. 아직 솔로인 이 씨는 "너무나 사랑했지만 어려운 환경 때문에 헤어졌다. 죽기 직전에 꼭 만나서 그때 미안했다고 말하고 싶다. 그렇지 않다면 평생 살면서 후회할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인터넷 커뮤니티 회원인 김성철(42) 씨는 '아는 사람들에게 안부전화하기' '아내에게 친필로 편지쓰기' 등의 올해 버킷 리스트를 작성했다. 김 씨는 "아내에게 평소 사랑한다는 말 한 번 제대로 못 했다. 몸도 예전 같지 않고 동창회에 안 나오는 친구들도 생기는 터라 아내와 지인들에게 속마음을 전하고 싶어 작성했다"고 했다. 사회적기업 '열정대학' 회원 1만123명은 각자 100여 가지 소원을 포스트잇에 작성하고 실천에 옮기고 있다. 내용도 '수감자에게 책 읽어 주기' '귀농학교에서 교육받기' 등으로 다양하다.
◆도전 목표가 있어야 삶의 활기
안 해본 것 없이 부귀영화를 누린 것 같은 사회 저명인사들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거창하지도 허황하지도 않다. 그저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소소한 것들이 리스트에 오른다.
김관용 경상북도지사는 페이스북 친구 1만 명 사귀기, 아내의 말 경청하기를 리스트에 올렸다. 다른 사람 칭찬하기와 아프리카 등지에서의 봉사 활동도 포함됐다.
홍철 대구가톨릭대 총장은 낭만파다. ▷문경새재길을 아내와 함께 걷기 ▷산촌의 초등학생에게 피아노 가르치기 ▷동네 도서관 만들기 등 소박하다. 홍 총장은 "평생을 내 곁에서 지켜주며 내조해준 아내에게 항상 고맙고 미안한 마음입니다. 봄이 오면 아내와 함께 문경새재에 들러 봄 향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하춘수 DGB 금융그룹 회장은 ▷10㎞ 마라톤 완주 ▷가곡 배우기 ▷국사와 중국문화 배우기를 꼽았다. "평소 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았지만 바쁜 일상 탓에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짬을 내서라도 하나하나씩 해보고 싶습니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고령화시대로 접어들다 보니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과거에는 열심히 일하다 곧 죽는 경우가 많았다. 일만 하다가 준비 없는 죽음을 맞는 경우가 많았던 셈이다. 그러나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과거와 다르게 은퇴 후에도 '쉰다'는 의미가 아니라 삶의 의미 봉사 명예 등의 형태를 통해 다양하게 죽음을 준비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버킷 리스트가 삶을 적극적으로 향유하려는 현대인들에게 하나의 문화로 정착하고 있다. 고령화사회의 특성이다"고 설명했다. 특히 삶의 긍정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임 교수는 "도전 목표가 있다는 것 자체가 생활에 활기를 주고, 오늘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를 분명히 알기 때문에 삶의 체계가 확실해지는 긍정적인 의미도 있다"고 했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대구경북 주요인사들의 버킷 리스트는?
▷김범일 대구시장
▷ 김관용 경북도지사
1.일주일에 꼭 한 번은 집안 환경 정비하기
2. 1년에 책 50권 이상 읽기
3. 매일 1시간 이상 걷기
4. 남의 말 잘 들어주기
5. 다른 사람 칭찬하기
▷홍철 대구가톨릭대 총장
1. 문경새재길을 아내와 함께 걷기
2. 산촌의 초등학생에게 피아노 가르치기
3. 동네 도서관 만들기
▷하춘수 DGB 금융그룹 회장
1. 10㎞ 마라톤 완주
2. 가곡 배우기
3. 국사와 중국문화 배우기
※버킷리스트='죽기전에 꼭 해 보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으로 '죽다'라는 뜻으로 쓰이는 속어인 '킥 더 버킷(kick the bucket)에서 유래했다. 2007년 죽음을 앞둔 두 남자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의 리스트를 만들어 실행한다는 내용을 담은 영화 'the Bucket List'가 상영되면서 널리 알려졌다. 지난해에는 SBS 주말드라마 '여인의 향기'에서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 이연재(김선아)가 버킷 리스트를 작성하며 남은 인생을 준비하는 모습이 그려져 시청자들로부터 공감을 얻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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