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겨울 한반도는 말 그대로 얼어붙었다. 서울의 기온은 영하 16℃까지 내려갔고, 철원은 영하 27도까지 곤두박질쳤다. 지구 온난화로 북극의 기온이 10도 정도 오르면서 시베리아의 찬 공기와 눈덩어리가 한반도 쪽으로 밀려온 것이다. 지구 온난화의 아이러니다. 이제 더 이상 눈도 소리없이 곱게 내리지 않는다. 아예 펑펑 아우성을 치며 나무와 뜰에 수북이 쏟아진다. 추위도 오스스 떨리는 얌전한 추위가 아니다. 손발이 얼어붙고 온몸이 부르르 떨리는 강추위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겨울에는 '삼한사온'(三寒四溫)이라는 아름다운 말이 있었다. 사흘 춥고 나면 나흘간은 따뜻하게 보낼 수 있다는 뜻이다. 추운 사흘 동안 이 땅의 나쁜 병균들은 죽고 따뜻한 나흘을 맞아 땅 속의 모든 생명이 봄을 준비하는 시간을 갖는다. 멸균의 시간과 생명의 시간이 몇 번 흐른 뒤 소설(小雪), 대설(大雪)을 거쳐 입춘을 맞는다.
사람들도 겨울이라고 해서 웅크리고만 있지 않았다. 아이들은 강 위에서 스케이트나 썰매를 타며 놀고, 어른들은 얼음을 깨고 낚시를 즐겼다. 가난한 연인들은 꽁꽁 언 강 위를 손 잡고 걷기를 좋아하여, 이들을 본 경찰은 몇 번이고 주머니 속에서 호각을 만지작거렸다.
밤에는 주로 새끼를 꼬거나 화롯불에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웠지만, 농민운동에 몰두한 전봉준 같은 이는 사발통문을 돌리느라 조금 더 바빴다. 세종대왕은 연구에 지쳐 잠들어 있는 집현전 학사에게 용포를 덮어 주었다. 이순신 장군은 큰 칼 옆에 차고 시름에 잠겼으며, 황진이는 깊은 밤 잠 못 들고 임 그리는 시조를 읊었다.
'동짓달 기나긴 밤 한 허리를 베어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어쩌면 우리나라는 날씨에 관한한 축복받은 나라일지도 모른다. 지구상에는 일 년 내내 추운 곳이 있는가 하면 덥기만 한 나라도 있다. 반대로 춥지도 덥지도 않는 어정쩡한 나라도 있다. 우리는 어떤가.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이 뚜렷하여 변화무쌍하지 않은가. 여름은 여름다워 부지런히 과일이 익고, 겨울은 겨울답게 온 땅이 동면에 들어간다. 꽃 피는 봄과 잎 지는 가을 또한 그 경계가 선명하여 생성과 소멸의 자연현상을 보여준다. 음식으로 치면 단맛'쓴맛'신맛'짠맛을 골고루 맛볼 수 있는 것과도 같다.
겨울의 멋은 역시 겨울맛 나는 날씨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오면 우리는 잠시 지난 겨울을 추억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해 겨울은 정말 춥고 힘들었노라고. 60년 만의 폭설은 대단했었노라고.
小珍/에세이 아카데미 대표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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