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상백일장] 시1-이별하는 골짜기

류재필(대구 달서구 성당1동)

그날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오래도록 천연덕스럽게 서 있었다

투덕투덕 떨어지는 뼛가루를 한 줌 집어올리고

애간장을 태운 만큼 그립도록 움켜쥐고 서 있었다

안개처럼 씨앗처럼 한 줌의 먼지가 되어버렸다

허공으로 높게 뻗어 몇 줌도 안 되는

회색빛 먼지는 바짓가랑이와 구두에 곱게 내려앉았다

방금 세수하고 난 아이처럼 한 번 흘러든 성에는 밤새 그대로 고여 있었다

구름이 잔뜩 낀 이 고요가 내겐 차라리 축복이 되어버렸다

조용히 쓸어 담은 마음 한 조각을 떼어내 먼 느낌이 들도록 손사래 치고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민들레 꽃씨처럼 이별하는 골짜기에서는

갇혀 있던 달빛도 그대로 눈송이로 쏟아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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