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대나무, 그 고통의 마디

사군자 중에서 겨울 군자라면 대나무라 할 것이다. 그 텅 빈 속과 푸른 빛은 겸허와 청렴을, 꼿꼿하고 강한 재질은 절개와 결백을 상징한다. 자기본위적이고 경쟁적인 사회관계 속에 아직도 '대쪽 같은' 인격은 우리 곁에 젖어드는 향수 같은 것이다.

대나무와 관련된 속담 중에 '대밭에서 쉴 때는 모자를 죽순 위에 걸어놓지 마라'라는 말이 있다. 어떤 대나무 종류는 4년 동안 땅속에 뿌리를 뻗어 자양분을 섭취한다. 5년째 되면 몇 주 안에 응축된 힘을 표출하며 수미터 성장해버린다고 한다. 이처럼 대나무가 급성장하는 특성 때문에 대통 속이 비고 그 굵기는 가늘다. 그렇지만 대나무에는 마디라는 절도가 절묘하게 디자인되어 있어서, 꺾이지 않는 대나무 정수리는 하늘까지 꿰뚫는다. 솔직히, 이런 기상을 내가 편애하고 의지해온 까닭은 오히려 유약해 빠진 내 기질 때문이다.

심적 방황이 심했던 대학시절, 친구들은 외유내강을 권고 삼아 일죽(一竹)이라는 별칭을 내게 지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님께서 서책을 덮고 다음처럼 질문하셨다.

"사상이 무엇이냐?"

치기 어린 내 별칭과 무관하게 나는 대구 도심에서 성장했고 댓잎에 손가락 끝도 베어본 적 없었다. 그 정도로 나에게 인생을 기획하고 책임져야 할 구체적인 목적의식이란 흐릿했다. '없습니다'라는 머뭇거리는 내 회피성 답변 끝에 당신의 입에서 '인간이 아니다'라고 꾸중이 떨어졌다. 그리고 나는 이후로도 답을 구하지 못했고 당신이 돌아가시던 그해 대나무와 바람이 많은 포항으로 옮겨 살게 되었다. 그 사이 알게 된 특이한 대나무의 생리는 개화를 하면 에너지 손실로 대나무들이 집단적 고사를 한다는 것이다. 인간적인 시각이지만, 그들이 인고의 생명력을 유지해온 최후가 개화 직후라는 점은 장렬하지만 그 얼마나 애처로운가.

어느덧 스무 해가 흐른 지금 나는 화첩 속 수묵화의 정물이 아니라 평범한 이웃 친구 같은 대나무들과 함께 겨울나기를 하고 있다. 오늘 새벽도 나는 야산의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한 손 가득한 대나무의 허리를 안아 본다. 힘을 겨루듯이 정수리까지 당겨 본다. 땅과 하늘 사이 활처럼 휘어지며 한 줌의 햇살이 댓잎에 떨어진다. 일제히 밤사이 굵어진 마디 속의 좌절과 상처들이 댓잎 소리에 묻히며 성장판이 열리는 소리가 나고 있다. 죽은 줄만 알았던 키 낮은 대나무들도 갈색 껍질을 벗기니 푸른 줄기를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죽비처럼, 일상의 톱니바퀴를 감속하듯이, 그중 날카로운 댓가지 하나가 톱니 틈에 꽂힌다.

사상이 무엇이냐, 어떻게 한 번뿐인 생의 최후의 마디까지 차근차근 계단을 밟고 포기할 줄 모르는 열정을 품을 수 있을 것이냐, 대나무에게 물어본다.

장두현<시인·문학박사 oksanj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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