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지방선거에서 기초자치단체장과 기초의원 정당 공천 폐지 실현 가능성이 높아졌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 공약으로 이를 내걸었고 야당도 동의의 뜻을 내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기초단체장 공천은 1995년, 기초의원 정당 공천은 2006년 각각 부활됐다. 하지만 밀실공천, 국회의원과의 종속 관계에 매몰돼 건전한 지방 정치를 실현하지 못한다는 비난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따라 전국 기초단체장협의회나 기초의회 의장협의회 등은 공천 폐지를 끊임없이 주장해 왔다. 그러나 정당 공천 폐지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정당을 통한 후보 검증 시스템을 무력화시켜 후보자 난립을 가져올 수 있다는 부정적인 의견도 있다. 정치 신인의 등장을 근원적으로 차단한다는 견해도 상당하다. 지방선거 정당 공천 폐지를 둘러싼 의견을 들어본다.
◆김장민 진보정책연구원 상임연구위원
-현행 기초단체장, 기초의원 정당 공천제는 밀실 공천이란 비난이 많다. 공천제가 유지돼야 하나?
▶선거에 자기 후보를 내는 것은 정당 본연의 임무다. 공천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헌법상 위헌 소지가 상당히 높다. 실제로 정당공천을 금지하는 법안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판단도 있었다. 다른 나라에서도 정당의 공천 자체를 금지하는 법은 없다. 다만, 공천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는 일이 핵심이다. 정당이 공직 후보 추천권을 독점하는 상황도 혁파해야 한다. 선진국에선 정당이 후보를 공천하는 대신 해당 지역에서 활동해 온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를 지지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식으로 '열린 공천'이 진행된다면 공천 자체를 문제 삼는 여론은 잦아들 것으로 보인다.
-상향식 공천제 주장이 많지만 제대로 실현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정당은 미국식과 독일식이 존재한다. 모두 상향식 공천제를 실시하고 있다. 미국식 정당은 공천권이 일반 국민들에게 있다. 국민참여경선을 통해 공천이 이뤄진다. 독일은 당원에 의한 공천을 법으로 정하고 있다. 민주주의에서 정당이 공직선거에 출마할 후보를 결정하는 방식은 이 두 가지뿐이다. 상향식 공천이 가능하냐고 묻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다. 상향식 공천을 제도적으로 정착시킬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 있다. 중앙 및 지역선거관리위원회가 각 정당의 후보 결정 과정에 개입하면 된다. 기술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다.
-지방의회에서는 건강한 양당제의 존립 기반이 사라져 있다.
▶정당 공천을 하면 특정지역의 특정 정당 독식현상이 나타난다는 의견이 많다. 이것은 여론이다. 현상에 대한 즉각적이고 감성적인 반응일 수 있다. 대안을 찾을 때는 보다 신중해야 한다. 감정적으로 '문제가 되면 없애면 되지 않느냐'는 방식은 곤란하다. 법과 제도를 두루 살피며 대안을 찾아야 한다. 여론 재판하듯 제도 개선에 나서면 안 된다. 정당 공천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폐해를 없애는 방향으로 논의를 전개하는 것이 건강한 대응이다.
-정당 공천이 유지되면 무소속 또는 참신한 인물의 등용문은 사실상 사라지게 된다.
▶정당이 공직 후보를 공천하는 방식을 바꾸면 된다. 간단한 방법이 있다. 기호 제도만 개선해도 지역 기반에 의한 '묻지마 투표'를 해소할 수 있다. 기호가 없어지면 유권자들이 좋은 후보를 찾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지역의 정치 신인들이 활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정당이 시민사회 활동가와 지역 명망가를 공개적으로 지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기성 정당들이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고 나서지 않는다. 당에 소속되진 않았지만 정책적 지향을 같이하는 지역일꾼과 정책연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유광준기자 june@msnet.co.kr
◆김태일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정당 공천의 가장 큰 폐해는 무엇인가
▶첫째, 정당 공천제는 국회의원의, 국회의원에 의한, 국회의원을 위한 제도다. 국회의원들이 지방의원들을 줄세우기 하거나 하수인으로 만드는 제도다. 지방의원들이 회의를 하다가도 국회의원이 오면 마중을 나가야 하는 실정이다. 둘째, 공천 과정에서 온갖 추문을 만들어왔다. 돈과 연줄을 동원, 공천을 받기 위해 애쓰다가 처벌을 받은 경우도 부지기수다. 셋째, 현재와 같은 지역주의 정치구도 아래에선 지방정치의 다양성을 말살시킨다. 대구와 광주에서는 특정 정당의 막대기를 세워놓아도 당선이 된다고 하는 게 정당 공천제 때문이다. 다양성의 실종은 고스란히 주민에게 피해로 돌아온다.
-공천이 폐지되면 정당 시스템을 통한 후보 검증도 사라지게 된다. 대안은
▶정당이 좋은 후보를 추천해 왔다면 정당 시스템의 후보 검증이 필요하다고 하겠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충성도'재력'사회특권층 위주로 이뤄져 왔다. 가장 준엄한 후보 검증은 유권자인 지역 주민들을 통해서 가능하다. 주민들이 후보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가질 수 있도록 하고, 더 많은 접촉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기초자치단체장'기초의원 선거를 광역자치 선거와 분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당 공천을 하는 광역 선거와 공천을 하지 않는 기초 선거를 동시에 하게 되면 정당의 영향력이 작용할 뿐만 아니라 주민들이 후보를 차분하게 검증하고 분별하기 어려워진다.
-정당 공천이 사라지면 후보자 난립의 폐해가 우려된다.
▶정당 공천이 없어지면 후보자 난립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은 근거가 희박하다. 예를 들어보자. 정당 공천 없이 실시된 교육감 선거, 교육위원 선거가 후보자 난립이었다고 할 수 있는가? 많은 사람이 출마했다 해서 문제를 일으킨 것도 아니지 않은가? 지방 유력가나 재력가만의 선거가 되리라는 것도 기우이다. 현행 공천제도야말로 재정적, 조직적 물량 공세를 할 수 있는 지방 토호들에게 유리하다.
-공천이 없어지면 중앙 정치권과의 소통 구조가 사라질 것이란 지적도 있다
▶정당 공천제가 폐지되면 지방정치의 자율성이 커지고 국가정치와 지방정치의 할 일이 분명히 나누어진다. 국회의원은 중앙 정치권과의 소통을 맡고 지방정치인은 지역의 정치적 리더로서 역할을 할 것이다. 국회의원과 지방정치인 사이의 충돌은 대개 국회의원이 지방정치인을 자신의 정치적 하수인으로 삼으려고 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정당 공천제를 없애면 지방정치의 자율성이 증대하면서 국회의원의 공천도 민주화되어 당원들의 의견이 존중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국회의원과 지방의원, 자치단체장의 갈등도 오히려 줄어들 것이다. 국가정치인도 지방정치인도 주민을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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