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 칼럼] 세상은 평평한가, 울퉁불퉁한가

뉴욕타임스의 토머스 프리드먼은 2005년에 '세상은 평평하다'는 책을 펴내 돈 좀 벌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글과 말로 돈을 가장 많이 번 사람 중 하나는 아마도 리처드 플로리다일 것이다. 2002년 '창조계급의 부상'을 펴내면서 한두 시간짜리 강연료가 4천만원으로 열 배는 넘게 뛰어올랐다. 그는 프리드먼의 책이 나오자마자 '세상은 울퉁불퉁하다'는 반론을 쓰고, '도시와 창조계급'이라는 책도 써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큰 도시재생이론가 대접을 받게 되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몇 차례 다녀갔다.

프리드먼은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1990년대 이후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으로 세계가 더 개방화되고 네트워크화되어 비즈니스 환경 측면에서 잘사는 곳과 못사는 곳 사이의 격차가 없어졌다고 한다. 인도의 방갈로르를 보면 미국의 실리콘밸리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플로리다는 인구나 경제활동의 분포를 보면 세상은 결코 평평하지 않고 산봉우리, 구릉, 골짜기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대체로 봐서 세상은 울퉁불퉁하다는 플로리다의 주장이 더 현실에 가깝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이다. 그는 가장 높은 산봉우리들 즉 세계적 대도시들은 좀체 망하지 않고 계속 번성한다고 한다. 온갖 재주꾼과 이상한(?) 인간들이 몰려들어 놀며 소통하고, 돈 벌 방법을 궁리한다. 다양성과 창조성, 혁신의 터가 되는 것이다. 그다음이 구릉과 같은 도시들이다. 이 도시들은 단기간에 발전과 쇠퇴 사이에서 운명이 엇갈릴 수 있다. 플로리다는 구릉 같은 도시 중 더블린과 서울을 혁신적이며 부유한 산봉우리로 커가는 대표 사례로 들고 있다. 끝으로, 광범위하게 분포하는 계곡지역은 글로벌 경제와 단절된 채 성장의 실마리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프리드먼과 플로리다의 얘기를 늘어놓는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지식과 경험을 서로 활발히 나누고, 부족한 부분은 국내외 연계를 통해 채워나가는 것이 지역 발전의 요체라는 것이다. 학술적으로 말하면 플로리다가 강조하는 도시화경제와 집적경제, 프리드먼이 강조하는 네트워크경제를 동시에 구현하는 것이다. 대경권(대구+경북)을 보면 인구는 덴마크와 비슷하고 도시화율은 두 배 정도 높다. 우리나라 평균 지능지수가 홍콩에 이어 세계 2위이므로 평균 지능지수도 덴마크에 비해 낮다고 할 수 없다. 뒤집어 말하면 대경권도 그 자체로 강소국이 될 만한 물리적 조건을 갖고 있다. 그런데 2011년 1인당 소득은 덴마크가 6만달러, 대경권이 2만달러 수준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다양성과 글로벌화 역량, 혁신 역량의 부족이다. 산업 측면에서의 집적경제는 어느 정도 구현되고 있으나 도시화경제와 네트워크경제가 살아나지 않고 있다. 플로리다가 말하는 창조계급이 형성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모나거나 특이한 사람을 배척하는 관행과 연고주의가 인사와 정책 결정 과정에 개입되는 사례가 많다. 박근혜 정부의 모토인 창조경제론이 과연 대경권에 통할 것인가? 기대보다는 우려가 크다. 창조계급이 형성되려면 지자체와 대학 등 지역문제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 집단의 일대 혁신이 시급하다. 또한 대구와 경북 간의 실질적인 연계, 인적'물적 자원의 융합적 활용이 이루어져야 한다. 대구와 경북이 힘을 합쳐 창조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덴마크와 같은 강소국을 향한 첫 걸음이 될 것이다.

두 번째는 대통령 당선인의 지역정책 공약 중 매우 높은 비중을 갖고 있는 도시재생 문제이다. 특히 대경권 전체 인구의 절반 정도가 살고 있는 대구의 도심재생사업이 중요하다. 대구의 중심부인 대구역-국채보상로 구역을 '대구'하면 금방 떠오르는 상징적 공간이자 세계적 명소로 탈바꿈시킬 수는 없을까? 플로리다는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현재의 하드웨어만으로는 창조계급이 깃들 공간 자체가 없는 것 같다. 획기적 상상력과 창조성을 살린 장기 전략을 세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조화롭게 가꾸어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사업만큼은 시장이 누가 되든 일관성 있게 추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장재홍/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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