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시골 아이들이 다 그랬지만, 면 소재지의 초등학교를 다니던 우리들도 십리나 되는 신작로를 걸어야만 했다. 짧은 다리의 아이들에게 십리 길은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는 곧잘 지나가던 빈차나 달구지를 얻어 타곤 했다. 그런데 거기에 재미를 붙인 우리들은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태워줄 만한 데도 태워주지 않으면 반감이 생겼던 것이다. 그 반감을 직접 행동으로 나타내기도 했는데 '늙은 말 괴롭히기'가 대표적인 예였다.
어느 날, 마을 앞 오르막길에는 청송 화목장(場)을 보러 갔던 말이 앞다리를 꿇고 버티고 있었다. 말 주인이 고함을 지르다가 엉덩이를 때리는 등 별짓을 다 해보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짐이 좀 무거웠나 보다. 말은 원체 영악해서 자기 힘에 부친다 싶으면 앞다리를 땅에 꿇고는 꿈쩍도 않는다. 꼭 꾀를 부리느라 그러는 것은 아니다. 원래 말은 지구력은 좋지만 뚝심이 약한 동물인 것이다. 우리들은 우르르 몰려가 떠밀어 주었다. 그때야 말이 일어서서 움직였다. 우리 악동들은 주로 악행을 일삼았지만 어쩌다가 '착한 일'을 할 때도 있었다.
한편 말의 처지에서 보면 가증스럽지도 않은 일이 벌어졌다. 요 조무래기들이 언제는 새총으로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가하더니, 또 언제는 이렇게 달구지를 밀어주는 친절을 베풀고 있으니 말이다. 병을 주고 약을 줘도 유분수다. 말 주인이 말을 매어놓고 주막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을 때 우리들은 힘없이 축 늘어져 있던 '그놈'을 새총으로 쏘아댔던 것이다. 어른이 되고서야 그 짓이 얼마나 끔찍한 '만행'이었는지를 알게 되지만.
우리가 말을 괴롭히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학교 길에 말 달구지를 만났을 때 빈자리가 있음에도 번번이 태워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태워주지 않은 건 말이 아니라 말 주인이었지만 엉뚱하게도 응징은 말이 당하였다. 귀책(歸責) 소재 같은 것은 어린 우리들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새총에 거기를 맞은 말은 뒷발을 번갈아 가면서 폴짝폴짝 뛰다가 몸을 비비 꼬기도 하는 등 고통을 참느라 발악을 하였다. 우리들은 그게 재밌어 더 쏘아대곤 했다.
언제부터인가, 어릴 때의 행색이 초라하던 그 수컷 말이 중년의 고개를 힘겹게 넘는 지금 우리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털이 빠져 볼품없던 몰골이나, 무거운 달구지를 끌고 이 장 저 장을 떠돌던 지친 모습이나, 또 힘도 없는 그걸 덜렁거리며 달고 다니는 모양새나. 세상살이 살아갈수록 수컷이기 때문에 감당해야 할 짐이 만만치가 않음을 느낀다. 문득 기억의 창고 흑백 사진첩에서 끄집어낸 이야기 하나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장삼철/삼건물류 대표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野, '피고인 대통령 당선 시 재판 중지' 법 개정 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