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렇게 생각한다] 김영호 사단법인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장

◇김영호 사단법인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장 = 국채보상운동(1907~1908)은 금융위기(1997) 때의 금모으기 운동의 원류이면서 훨씬 더 감동적인 운동이었다. 당시 부녀자들은 쓰고 있던 은비녀와 은가락지를 뺐다. 먹기도 모자란 보리쌀을 내놨다. 나무를 베어 나뭇짐을 바쳤고 금주'금연한 돈을 바쳤다. 심지어 거지도 동냥해 성금을 냈다. 금 모으기 운동을 할 때는 그래도 생필품이 아닌 귀금속을 내다 주고 그 대신 은행 등에서 돈을 대가로 받았지만 국채보상운동 때는 생필품을 전혀 대가를 받지 않고 내어놓았던 것이다. 말하자면 금 모으기 운동이 있는 것 혹은 남는 것을 내어놓는 운동이었다면 국채보상운동은 없는 것 혹은 생필품을 내어놓는 운동이었던 셈이다. 최근 당시의 원자료가 다수 발굴됐는데, 지방 단위로 가가호호 안 낸 집이 없을 정도였다. 신문'잡지에 보도된 정도를 훨씬 넘었다. 대구경북에서 일어나 전국을 휩쓴 국민적 순수 기부운동의 극치였다.

이뿐이 아니다. 여성들이 이 운동에 참여하니 한국 근대 여성운동의 시작이었다. 학생들이 참여하니 한국 근대 학생운동의 시초가 됐다. 신문이 앞장서니 한국 최초의 프레스 캠페인이었다. 다시 말해 한국의 시민운동, 경제주권 수호운동, 여성운동, 학생운동의 출발점이다. 이육사의 말대로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던 것"이다. 사실은 3'1운동도 물산장려운동도 금 모으기 운동도 그 원류는 국채보상운동이다. 이 원류야말로 대구경북의 보배를 넘어 우리 민족의 보배가 아닐 수 없다. 요즘 모처럼 일고 있는 기부운동, 나눔운동의 역사적 원류라 말해도 좋다.

당시 정부 고관이나 귀족들이 이미 손을 든 상황에서 지식인'상공인'농민'학생'여성'서민 등이 국민된 책임의식에서 나랏빚을 대신 갚기 위해 전국에서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났다. 이는 역사 담당세력의 교체를 의미한다. 한국 근대사 담당세력이 권리나 이윤추구의 자유가 아니라 책임과 기부운동의 형태로 등장했다. 전근대적 특권적 질서 위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아니라 그것을 넘어선 근대시민적 '시티즌 오블리주'(citizen oblige)가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국채보상운동 기념일을 '국민 기부의 날' 혹은 '국민책임의 날'로 정하자는 운동이 공감을 넓히고 있다. 오늘날 세계적 '책임 혁명의 시대'의 원류로 삼자는 뜻이기도 하다.

이 운동의 발상지인 대구에서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에 국채보상기념관이 문을 열었다. 이곳은 '한국 기부문화 1번지'로 명명됐다. 한국의 각계각층에서 기부운동 나눔운동을 주도하는 인사들이 거의 빠짐없이 함께 모여 "한국기부문화1번지"를 축하했다.

국채보상운동은 채권자의 '부추김과 꼬임'에 대한 비판과 함께 국민적 기부운동을 전개했다. 채무자의 책임을 다하면서 채권자의 책임을 촉구한 것이었다. 따라서 국채보상운동은 부채로부터 대탈출하기 위한 근검절약운동을 추동하는 모델이 될 수 있다. 작금의 세계 경제위기를 국채보상운동의 세계화로 해결해 보자는 이야기다. 국채보상기념관은 '세계 경제 희망의 집'이 되기를 기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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