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으로 죽은 역사 속 권력자들이 적잖다. 중국 고고학계에서는 진시황이 중금속 중독으로 급사했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불로불사'를 이루려 수은과 유황을 혼합한 '금단'을 과잉 복용했다는 것. 나폴레옹도 비소 중독으로 죽었다. 나폴레옹의 머리카락을 정밀 분석했더니 비소가 검출됐다. 집무실을 화려하게 꾸민다며 벽지에 바른 초록색 안료가 뿜어낸 비소에 나폴레옹이 장기간 노출됐다는 것.
중독은 이제 권력자들만의 얘기가 아니다. 세상이 점점 독소 더미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종 생활용품과 먹을거리에서 독소 물질이 검출되고 있고, 인터넷'게임'스마트폰 중독 등 디지털 중독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해독' 트렌드가 최근 뜨고 있다. 해독을 제대로 해야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단다. 해독은 '웰빙'의 필수 조건이 됐다.
◆독소 더미 속 현대인
직장인 김모(33) 씨의 하루를 들여다보자. 아침에 일어나 비누로 샤워를 하고, 샴푸로 머리를 감고, 칫솔에 치약을 짜 양치질을 하고, 얼굴에 화장품을 바른다. 회사에서 누리는 유일한 위안은 흡연이다. 상사가 주는 이런저런 스트레스에 하루 담배 한 갑은 기본이다. 식사도 화끈하게 맵고 짠 '인공조미료(MSG) 찌개'를 주로 찾는다.
김 씨는 하루 종일 독소 더미 속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비누'샴푸'치약'화장품 등 합성제품에는 미량이나마 독소가 들어 있다. 특히 담배에는 무려 4천여 종의 유해물질이 들어 있다. 인공조미료는 비만'당뇨'고혈압 등 각종 성인병의 원인이다. 물질로 된 독소만 가득할까.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으로 익히 알려진 정신적 독소다. 스트레스는 다시 흡연과 폭식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면서 온갖 독소가 점점 김 씨의 몸에 축적된다.
◆'독' 품은 합성화학물질로 가득한 세상
세상을 독소 더미로 만든 가장 큰 원인은 각종 합성화학물질 때문이다. 석유를 정제할 때 나오는 폐가스로 만드는 것으로 지난 세기 석유화학공업의 발달과 함께 탄생했다. 값싸게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그래서 다양한 생활용품의 재료로 보급됐다.
우리 생활에 편리함만 선사하던 합성화학물질은 그러나 최근 심각한 피해를 일으키고 있다. 2011년 국내에서 간질성 폐질환 사망자가 잇따르자 질병관리본부는 '가습기 살균제'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지난달 7일 영남대 조경현 교수팀은 "가습기 살균제의 합성화학물질 성분은 폐질환뿐만 아니라 심장 대동맥 섬유화를 촉진하는 등 심각한 독성을 지녔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세제'샴푸'치약'화장품 등에 두루 쓰이는 합성화학물질인 '계면활성제'도 최근 논란의 대상이 됐다. 지난해 1월 순천향대 홍세용 교수팀은 "계면활성제가 체내에 축적되면 유전자 변형을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이에 대해 식약청은 "마시면 그렇다. 계면활성제 제품의 사용 특성상 물로 씻어내면 인체 위해성은 극히 낮다"고 밝혔다. 하지만 계면활성제를 활용한 제품이 주변에 워낙 많기에 안심할 수 없는 일이다.
이처럼 생활용품에 들어 있는 독소는 제품을 쓰지 않으면 차단할 수 있다. 하지만 비소 중독으로 죽은 나폴레옹의 사례에서 보듯 '공간'이 뿜어내는 독소는 피할 길이 없다. '새집증후군'이 대표적인 예다. 옛날에는 나무와 흙만 있으면 집을 지었지만 요즘 집은 첨단기술의 복합체다. 각종 건축 재료에 들어 있는 포름알데히드'스틸렌'에틸벤젠 등의 합성화학물질이 새집증후군의 주범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새 건물에서 눈과 목의 점막이 따끔거리거나 피부에 습진이 생기거나 쉽게 피로해지거나 심할 경우 현기증이나 구토 증상이 나타나면 새집증후군을 의심해야 한다"고 밝혔다.
◆건강 해독 시장이 뜬다
세상이 독소 더미가 되자 해독 관련 업계도 자연스럽게 떠오르고 있다. 의료계는 '해독 클리닉'이 유행이다. 진료 과목에 추가하거나 병원'의원 대신 해독 클리닉 문구를 간판에 새기는 전문병원도 나타나고 있다. 그만큼 수요가 있다는 얘기다. 음주'흡연'스트레스 등으로 인한 만성질환 및 생활습관병이 늘고 있고, 아토피'알레르기 등 주변 환경이 내뿜는 독성에 민감한 체질도 늘면서 해독요법을 찾는 환자들이 늘고 있다는 분석.
살펴보면 해독 클리닉 전문 한의원이 많은데 한의학은 오래전부터 해독이 화두였다. 중국 한나라 때 의학서인 '황제내경'은 독소가 인체 면역력을 떨어뜨린다고 보고, 어혈'수독'담음 등으로 독소의 개념을 세분화했다. '동의보감'은 인체에서 독소가 빠져나가는 마지막 관문을 대장으로 보고, '장청뇌청'(장이 깨끗해야 머리가 맑아진다)의 원리로 설명했다.
'해독 다이어트'도 인기를 얻고 있다. 식이요법과 운동에 더해 다양한 해독요법으로 장기에 쌓인 독소를 몸 밖으로 배출시킨다. 그러면 몸의 기능이 회복돼 단순 체중 감량이 아닌 비만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한다는 설명이다.
◆디지털 중독 시대
신체 건강을 넘어 정신 건강 내지는 삶의 질 개선의 개념으로 해독 분야는 확대되고 있다. '디지털 디톡스'가 대표적이다. 말 그대로 디지털 중독 현상을 치유한다는 것이다. 최근 디지털 기기가 널리 보급되면서 인터넷'게임'스마트폰 등 중독 현상도 점점 만연해지고 있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이 2011년 만 5세에서 49세 인터넷 사용자를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중독자 수는 1년 전보다 59만6천 명 증가한 233만9천 명이었다. 문제는 유아(만 5~9세)와 청소년의 인터넷 중독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성인의 인터넷 중독률이 6.8%인 데 비해 유아는 7.9%, 청소년은 10.4%였다. 이는 곧장 유아와 청소년들의 온라인 게임 중독으로 연결된다는 분석이다.
최근 폭발적으로 보급된 스마트폰은 중독 수준이 더욱 심각하다. 지난달 29일 방송통신위원회가 내놓은 '2012 하반기 스마트폰 이용실태 조사' 자료에 따르면 스마트폰 이용자의 77.4%가 "특별한 이유 없이 스마트폰을 확인한다"고 답했고, 35.8%는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안하다"고 답했다. 스마트폰 중독의 주요 원인도 게임으로 분석된다. 업계에 따르면 모바일 게임 시장 규모는 지난해 7천억원대였고, 올해 1조원대 돌파가 전망되고 있다.
◆디지털 디톡스도 뜬다
그러면서 좀 더 세분화된 문제 인식이 더해지고 있다. 예를 들면 디지털 중독이 정신 건강을 해치고 시간을 빼앗는 것은 물론 안구건조증'거북목증후군'손목터널증후군 등 신체 건강까지 해친다는 것. 디지털 스트레스도 새로 정의되고 있다. 최근 대형 사이트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잇따르면서 정신적'금전적 피해가 늘고 있고, 소셜미디어서비스(SNS)와 실제 현실 사이의 괴리감이나 스토킹 문제 등으로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는 것.
이와 관련 미국의 호텔, 리조트들은 디지털 디톡스 여행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여행객이 체크인을 할 때 모든 디지털 기기를 반납하면 숙박료를 깎아주는 식이다. 일종의 디지털 단절 체험으로 국내에도 곧 도입될 것으로 통계청의 '2013 뉴 블루슈머(블루오션+소비자)' 자료에서는 전망했다. 이외에도 최근 스마트폰 사용제한 애플리케이션이 등장했고, 각종 인체공학 디자인의 디지털 보조 기기들이 속속 출시되는 등 디지털 디톡스가 유행 조짐을 보이고 있다.
디지털 중독으로 가장 혹사당하는 것은 인간의 뇌다. 최근 발간된 '멍 때려라'의 저자 신동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각종 디지털 중독으로 우리의 뇌는 1초도 쉬지 못하고 있다. 인간의 뇌는 휴식을 통해 정보와 경험을 정리하고, 기억을 축적한다"며 "각종 디지털 기기에 '학대'당하고 있는 현대인의 뇌에 '디폴트 모드'(멍한 상태)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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