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원 영남자연생태보존회 회장=대구처럼 다채로운 물길을 끼고 있는 도시는 드물다는 생각이 든다. 북으로는 팔공산지의 부챗살 같은 수많은 물길들이 모여 동화천이 되고 이 천은 금호강과 합류한다. 남으로는 비슬산지에서 발원하는 물길이 신천이 되어 금호강과 합류한다. 이 두 물길이 금호강에 모이는 지역이 바로 대구시민이 아끼던, 드넓은 모래밭과 버들 숲으로 어우러진 무태유원지였다는 사실은 나이가 좀 든 대구 토박이들은 다 알고 있다.
낙동정맥의 깊은 골짜기, 포항시 죽장면 가사령 계곡에서 발원하여 영천'하양을 거쳐 대구지역을 동에서 서로 가로지르는 금호강이 흐르고 있는데, 그 강변에 자리 잡고 있는 동촌유원지는 또 어떤 곳이었는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유유히 흐르는 맑은 물에 수영하다가 지치면 강변 모래와 자갈밭에서 몸을 말리기도 하고 더우면 버들 숲에 들어가 땀을 식히기도 했던 곳이 아니던가. 이 강은 태백산에서 발원하여 남으로 흐르는 낙동강과 합류한다. 이 지역이 바로 그 유명한 달성습지다. 1989년 국제자연보존연맹에서 발간한 아시아 습지 목록에 따르면 당시의 면적이 약 50㎢였다. 현재 성서공단 일대와 고령군 다산면 일대가 포함된 넓이다. 여름철이면 강정유원지와 화원유원지에서 사람들은 매운탕에다가 모래찜질을 즐겼고, 겨울철이면 시베리아에서 먼 길 날아온 흑두루미들을 비롯한 수많은 새들이 먹이를 구하고 추위를 피하던 곳이었다. 크고 작은 다양한 물길에 생명계와 사람이 어우러져 있다는 측면에서 볼 때 이보다 더 자랑스러운 도시가 또 어디 있겠는가!
1980년대 초 금호강 최하류 강창교 일대만 해도 조금만 가물면 물이 흐른 게 아니라 온 천지에 지독한 악취를 풍기는 시커먼 뻘만 바닥에 쌓여 있었다. 당시에는 생태계나 생명계라는 말 자체를 쓰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물이 흐른다. 물고기도 살아가고 있다. 이 뻘을 물로 바꾸기 위해 얼마나 많은 예산과 노력을 쏟아 부었는지 이들이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이 엄청난 노력을 통해 신천에 수달이 보이기도 하고, 동화천 하류와 금호강에 버들 숲이 우거져 있어 새들이 찾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물길이 호안시설, 제방, 보, 댐으로 갇혀있어 본래 하천과는 전혀 다른 생태계로 변질되어 간다는 사실이 걱정스럽다. 보나 댐과 같은 인공시설물 때문에 모래밭과 자갈이 있어야 할 하천 바닥에까지 갈대, 달뿌리풀, 버들 숲이 들어서고 있어 홍수 때 물 흐름이 지체되고 범람할 염려가 있다는 사실도 두고두고 부담이 될 것이다. 도심지 실개울이 모두 하수구로 변해 버렸다는 점도 아쉽다. 하천을 생명계로 보지 못하고 단지 물이 흐르는 공간으로만 보고 재해 방지나 수자원 확보 차원에서만 접근했기 때문이다.
도시가 복잡해지고 커져 갈수록 이와 비례하여 도시 삶을 탈출하려는 사람들의 욕망은 더욱 커지면서 자연성이 그만큼 값진 것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제 대구시 당국과 시민들은 이를 알고 지난날 배고픔 때문에, 또 이기심과 탐욕 때문에 잃어버렸던 우리의 영혼을 다시 찾고, 생명력을 찾기 위해 무척 애쓰고 있다. 이보다 더 자랑스럽고 가치 있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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