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삼력의 시네마 이야기] 시나리오, 이렇게는 쓰지 말자

최근 모 기관에서 의뢰받은 단편 시나리오 심사는 집필한 작가나 연출자의 정성에 대해서는 무한 감동을 하면서도 그 작품을 읽는 것 자체는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연령대는 천차만별이지만 아직 영화에 입문한 지 오래되지 않은 이들의 시나리오이기 때문에 노력을 질책할 의도는 전혀 없다. 다만, 본인 역시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창작 초기에는 더더욱 작품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여러 시나리오를 썼기 때문에 필자가 읽으면서 발견한 이야기의 문제점들을 개선하기 위해 조언을 하고자 한다.

우선 심사한 대다수 작품에서 발견된 문제점은 주인공이 무엇을 원하는 지가 분명하지 않다는 점이다. 인물이 등장하자마자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순식간에 끝나는 것이 단편영화이다. 그런데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마치 용이 되고 싶은 이무기가 여의주를 눈앞에 두고 주위만 서성거리는 모습이다. 관객은 주인공의 '욕망'이나 '목표'에 따라 영화를 감상한다. 즉 주인공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획득하는가 또는 그것을 얻는 데 실패하거나 포기하는가를 보는 것이 이야기이다. 그런데 관객이 무엇을 따라가야 할지 불분명하면 이야기에 몰입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 한 가지 문제점은 결말의 모호함에 있다. 부연하자면 단편영화의 매력과 이야기의 끝맺음을 하지 않은 것을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짧은 시간 안에 기승전결의 구조를 모두 확립할 수 없다는 것이 편견임은 신문의 4컷 만화가 증명하며 15초 광고 역시 마찬가지다. 또한, 결말은 작가가 관객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이를 통해 관객은 작가가 자신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어 했는지 알게 된다. 그런데 결말이 아예 생략된 시나리오가 많았다. '열린 결말'과 결말을 결정하지 못한 것은 다르다. 열린 결말은 정답이 정해지지 않은 문제나 상황에서 나오는 '딜레마의 영역'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한편, 대사로 너무 많은 것을 전달하고자 하는 기술 역시 피해야 한다. 심사 대상 시나리오의 대다수가 장면을 설명하는 지문보다 대사의 양이 절대적으로 많았다. 주인공의 행동이나 사건을 결정하는 대사가 아니라면 대사 전부를 지워도 장면별로 이야기 전개가 가능해야 하는데 그림으로 설명해야 할 부분을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전부 토해내고 있다면 라디오 드라마가 더 적합한 것이 아닐까? 또한, 영상을 보러온 관객이 실시간으로 인물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전부 이해할 수 있을까?

영화에 정답은 없다. 그리고 누구도 좋은 영화와 나쁜 영화라는 이분법으로 다른 작가의 영화를 판별할 수는 없다는 것을 지지한다. 하지만, 많은 시간과 인력이 요구되는 영화 제작과정에서 조금이나마 이야기를 온전히 전달하는 방법이 있다면 이에 대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김삼력<영산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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