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유대안의 아리랑 이야기] (9)영천 아리랑

만주 이주 경상도 사람들이 전파

▲영천아리랑이 세간에 알려지는 계기가 된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평양 정상회담.
▲영천아리랑이 세간에 알려지는 계기가 된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평양 정상회담.

# 독립군 군가 개사 등 북한서 유명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첫날 저녁 만찬장에서 남북 두 정상은 진돗개와 풍산개 사진을 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남쪽 사람들은 처음 듣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바로 '영천아리랑'이었다. 남쪽에서 귀한 손님이 방문해 남쪽 아리랑인 영천아리랑을 들려준 것이다. 의아해하는 남쪽 사람에게 북측 관계자는 "대구 옆 사과가 많이 나는 영천지방의 아리랑"이라고 귀띔해 주었다. 그 후 남한의 아리랑 연구가들은 북한과 연변지역에 가서 영천아리랑이 불리고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 영천아리랑이 북한에서는 유행했으나 그때까지만 해도 남한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영천아리랑이 북한에서 유행하게 된 연유는 이러하다. 일제강점기 때 영천지방 사람들이 대거 북간도로 이주한 사실이 있다. 영천 사람들이 이주하는 과정에 두만강 근처 회령에서 잠시 정착하기도 했는데 그곳에서 영천아리랑을 퍼뜨렸으며 정착지인 북간도에서도 영천아리랑을 전파했다. 영천아리랑은 곡조가 경쾌하여 만주 일대에서 활동하던 독립군들이 가사를 고쳐 군가로도 불렀다. 이후 회령과 북간도에서 불렸던 영천아리랑이 북한 전역에 전파됐다.

현재 북한에서 불리는 영천아리랑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엇모리장단으로 '건드러지게'라는 나타냄 말처럼 경쾌하고 멋들어진 경서도조의 곡이다. 다른 하나는 메나리토리로 '사랑스럽게'(양산도장단)라고 표기되어 있는 세마치장단의 곡이다. 두 곡은 기존의 영천아리랑을 변형시킨 것인데, 남한에 알려진 후 영천지방에서는 후자의 것을 부른다. 결국 본래의 모습이 바뀌어 고향에 돌아온 것이다.

얼마 전 영천에서 토속적인 영천아리랑을 부르는 사람을 찾았다. 영천시 임고면에 사는 한 고로(古老)는 젊은 시절에 불렀던 영천아리랑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아리아리 아리아리 아라리요, 아리아리 고개를 넘어간다. 영천읍내 물레방아는 물을 안고 돌고, 우리 집에 저 영감 날 안고 돈다. 아리랑고개는 열두 고개, 영천읍내 땅 고개는 한 고개라." 이 곡은 가창자의 증언, 사설에서 영천지방의 지명, 영남지역의 강원도아리랑 경로와의 유사성, 그리고 토속적인 곡의 형태 등을 보아 영천아리랑의 원형임이 분명하다.

일각에서 영천아리랑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으나 북한, 연변, 경상도 출신 집성촌인 흑룡강성 상지시 등에서 북한과 중국에서 불리는 영천아리랑의 존재와 이동경로에 대해 확인한 바 있다. 문헌에서는 평양 발행 '조선민속사전'에 경상도 영천지방으로부터 유래한 영천아리랑이 소개되었다. 1930년대 경북 칠곡 출신 국문학자 김사엽의 신문 글과, 1960년대 대구 출신 음악학자 김진균(작고)의 빈대학 박사 학위 논문에서도 영천아리랑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한동안 영천아리랑이 고향인 영천에서 단절되었다가 북한에서 부르는 영천아리랑을 계기로 다시 불리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기왕 영천아리랑을 다시 부를 바에는 북한식으로 개량한 영천아리랑보다 영천지방에서 전승되어 온 토속 영천아리랑을 부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원조의 자존심' 때문에 말이다.

유대안<작곡가·음악학 박사 umusi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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