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50년 독 짓던 토담방, 화마로 잃었다

무형문화재 상주 정학봉 翁 옹기 작업방 원인 모를 화재

150년 이상 전통 옹기를 제작해오던 상주옹기장 작업방이 13일 발생한 불로 완전히 타버린 가운데 타지 않은 고철 난로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 상주소방서 제공
150년 이상 전통 옹기를 제작해오던 상주옹기장 작업방이 13일 발생한 불로 완전히 타버린 가운데 타지 않은 고철 난로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 상주소방서 제공

13일 오후 1시 13분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정학봉(85)'대희(53) 씨 부자가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150년 역사의 상주 옹기장 작업방(상주시 이안면)이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불로 모두 타버렸다.

이날 불은 정 씨 등이 작업방을 비운 사이 발생했는데, 안에 있던 진공토련기와 전기 및 나무물레 4대 등 제작 장비가 모두 불에 타 1천200여만원의 재산피해(소방서 추산)를 냈다. 다행히 주택 등으로 번지지 않아 인명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재산피해보다 정 씨 부자의 조부 등 6대가 150년 이상 전통 옹기를 제작해오던 토담 작업방(160㎡)이 완전히 불타 형체가 사라져 큰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대를 이어 이곳에서 독을 지어온 정학봉 씨는 2007년 경북도 무형문화재(옹기장)에 지정됐다. 정 씨는 14세 때부터 옹기를 만드는 일을 시작해 69년간 흙과 유약을 만져왔고 아들 대희 씨 역시 아들 창준(33) 씨와 함께 이곳에서 작품활동에 매진하는 등 정 씨 집안은 고조부 때부터 150여 년간 독 짓는 일을 가업으로 이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흙 만지는 일에 흥미를 갖고 있는 정 씨의 증손자 웅혁(13) 군까지도 함께 참여해 한 지붕 4대가 가업을 잇고 있다. 이 집안 옹기는 광명단(산화납이 들어간 유약)을 발라 저온에서 굽는 요즘 방식과 달리 재와 흙을 섞어 발효시킨 천연 잿물을 사용하고 1천200℃의 고온으로 굽는 전통방법을 고수해 왔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상주 이안면 흑암리에는 고려시대부터 누런색 옹기인 황옹(黃瓮)을 만들던 옹기촌이 있었다고 한다. 마을 전체가 옹기촌이라 옹기굴로 불리던 이 흑암리에서 현재 옹기 제작에 종사하는 가구는 이곳 한 곳뿐이며, 당시 옹기를 만드는 토담 작업방도 이곳이 유일했다.

정 씨 집안에 내려오는 옹기 만드는 기술은 기나긴 전통만큼이나 정통성을 지니고 있고, 소실된 토담 작업방은 전통 옹기장 생산의 산실이자 이들의 열정과 혼이 깃든 곳이나 이번 화재로 사라지게 돼 큰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토담 작업방에 전기'나무'석유 난로 3개와 다수의 부탄가스통이 발견된 것에 주목하고 화재원인을 조사 중이다. 상주'고도현기자 dor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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