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3대 바보는?
손자 본다며 모처럼 놀러 갈 계획을 취소하는 사람.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자식에게 일찍 재산 다 물려주고 용돈 타 쓰겠다는 부모. 자식들이나 손자들 놀러 오면 방 모자랄까 봐 뒤늦게 집 늘려가는 할아버지 할머니란다.
웃자고 하는 이야기지만 늙어서까지 자식에게 올인하는 사람의 어리석음을 경계하는 내용이다. 자식보다 자신을 먼저 챙겨야 하며, 자식을 믿다간 발등 찍힌다는 경고까지 담겨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개의 부모들은 여전히 어리석다. 2010년 미래에셋 퇴직연금연구소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베이비부머 세대의 65.4%가 자녀 교육비와 결혼자금 때문에 자신의 은퇴 이후를 준비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은퇴 준비와 자녀 교육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자녀 교육이 은퇴 준비보다 더 중요하다고 답했다.
◆상처뿐인 노년
50대 후반의 하모 씨는 서울 사는 아들 집에 갔다 온 이후로 우울하다. 며느리 눈치 보느라 안절부절못하는 아들이 한심하고 서운했지만, 조용히 잘 살아 주는 것만 해도 효도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는 중이라고 했다.
"장가간 아들 집에 가서 밥 얻어먹는 것은 고사하고 며느리 밥까지 해주고 돌아오는 시어머니들이 적지 않습니다. '내 아들을 어떻게 키웠는데'라며 억울해하면 화병만 생길 뿐이지요. 부모가 자식에게 기대거나 대접받는 일은 꿈도 못 꾸는 세상이 됐나 봅니다."
일찍 재산을 물려주고 후회하는 부모 또한 적지 않다. 김모(72) 씨는 "60대 후반에 혼자돼 큰아들이 자신을 모신다기에 고맙고 반가운 마음에 전 재산을 다 주었습니다. 그런데 며느리 시집살이가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따로 사는 게 좋겠다 싶어 아들에게 집 사달라고 했다가 상처만 받았다"고 했다. 그는 "아들이 집 사드릴 돈이 없다며 같이 살기 싫으면 작은 월세방이라도 얻어 나가시라고 하더라"며 "내 아들이 설마 그렇게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일찍 재산을 물려준 것이 잘못이었다고 덧붙였다.
한국 노동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1995년 우리나라 고령자 소득의 56%가 자녀들로부터 받은 용돈 즉 사적이전소득이었다. 일본의 경우 1980년 16%이던 사적이전소득이 불과 15년 만에 4%로 4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이보다 더 빠른 속도로 자녀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자식이 결혼을 해도 생활비뿐 아니라 손자들까지 돌봐줘야 하는 것이 요즈음 60대의 처지입니다. 부모에게 손 안 내미는 것만 해도 고맙지요. 용돈은 무슨 용돈. 아껴서 사는 수밖에 없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 세대가 참 안됐어요. 부모님 모셔야 하고 자식들에게는 대접도 못 받으니…." 60대의 한숨 섞인 하소연이다.
◆냉정은 필수
'은퇴 후 30년을 준비하라'는 책을 쓴 오종남은 이렇게 말한다.
"자식에게 올인하지 말고 하프인하자. 나머지 반은 본인의 노후를 위해 쓰자는 겁니다. 내가 젊어서 너희들 뒷바라지하는 데 올인했으니 이제 너희가 내 노후를 책임지라고 한다면 과연 어떤 자녀가 좋아하겠습니까. 속으로 누가 자기 먹을 것도 남기지 않고 나를 위해 다 쓰라고 했느냐고 이야기할지도 모릅니다."
부모들은 자식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된다면 빚을 내서라도 집을 마련해준다. 또 자식이 어렵다며 손 벌리면 자신의 노후는 잊은 채 집을 담보로 해서라도 돈을 대준다. 자식들은 고맙다는 한마디만 달랑 남길 뿐, 그것으로 끝이다. 부모가 자식을 도와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자녀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되고 빈곤 노인층으로 밀려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자식들이 도와달라고 하면 거절하기가 어려워 함께 나락으로 떨어진 경우다.
미국 하버드대학교의 그레고리 맨큐 경제학 교수는 만 50세가 되던 해에 '나의 생일 소원'이라는 칼럼을 뉴욕타임스에 기고했다. 주제는 '자식에게 짐 안 되기'였다. 경제적인 것은 물론 감정적인 것까지도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내용이었다.
부모들은 좀 더 냉정해져야 한다. 자녀를 공부시키느라 등골이 휘고 훗날 빈손이라면 스스로에게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진정으로 자식을 사랑하는 방법은 노후에 자식에게 손 벌리지 않기다. 젊어서 자식에 잘해주는 것이 아니라 늙어서 자식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이 진정한 자식 사랑이다. 노후에 손 내미는 부모를 홀대하는 자녀에게 서운한 마음을 가져봐야 때는 이미 늦다.
◆믿을 건 자신뿐
자녀들 시험 때면 공부에 방해된다며 TV조차 이어폰을 끼고 보는 아버지, 밤낮없이 자식들을 위해 발 동동 구르며 바쁜 엄마. 부모는 있어도 부부는 없는 세월을 마다하지 않았던 극성 부모들도 이젠 믿을 건 자식이 아니라 자신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3040세대들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자녀 교육비를 줄여 자신의 노후를 준비하고 있다. 노후를 대비해 저축 및 투자한다는 답변이 2009년 27.9%에서 2012년 32.7%로 늘어났다. 반면 교육비가 가장 많이 드는 30~50대에서 자녀 교육비 비중은 24.7%에서 21.3%로 줄었다.
"자녀 과외비를 줄이면서 애들에게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노후를 스스로 챙겨야 한다는 생각에 과외비를 줄이고 장기펀드에 가입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솔직히 이야기했지요. 정년은 빨라지고 기대수명이 늘어나 아빠 엄마는 노후 준비를 해야겠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자녀들이 현실을 직시하고 인터넷 강의를 스스로 찾아보면서 적극 협조했습니다." 40대 중반의 회사원 박상원 씨의 말이다.
베이비부머(1955~1963년 사이 출생자)들 역시 비슷한 답을 내놓았다. 100명 중 99명은 자녀의 경제적 지원을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자녀에게 도움을 받겠다는 응답은 0.8%에 불과했다.(보험연구원 조사)
김효신 경북대 로스쿨 교수는 "자식들이 부모 부양하는 것이 더 이상 사회적 규범이 아닌 세상이 됐다. 그러므로 은퇴 후 30년의 긴 세월 내 노후는 내가 준비한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며 자식은 그저 기르는 재미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중년이 되어서 자식이 유일한 자랑거리일 때 그때부터 부모의 비극은 시작된다.' 한 번 곱씹어 볼 만한 이야기다. 특히 자식에게 올인하고 있는 부모들에게는.
김순재 객원기자 sjkimforce@naver.com
그림'화가 이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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