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글 몰랐다" 말 못해 몰래 다닌 학교…'마음의 짐' 졸업

어르신 11명 졸업시험 통과…아들에 쓰는 첫 편지 '뭉클'

대구시 남구 대명동 가톨릭문화관 2층 강당에서 열린 새빛학교 졸업식에서 만학도 할머니들이 학교장 이민락 주임신부로부터 졸업장을 받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대구시 남구 대명동 가톨릭문화관 2층 강당에서 열린 새빛학교 졸업식에서 만학도 할머니들이 학교장 이민락 주임신부로부터 졸업장을 받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졸업을 하더라도 새빛학교를 잊을 수 없을 겁니다. 새빛학교가 있어 저희는 너무 행복했습니다."

27일 오전 11시 대구시 남구 대명동 가톨릭문화관 2층 강당에서 열린 새빛학교 졸업식에서 졸업생 대표로 답사를 맡은 김유정(가명'62'여) 씨는 답사 첫 문장을 읽은 뒤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김 씨는 답사를 읽는 내내 울먹이면서 "글을 몰라 울어야 했던 세월이 얼마인지 모른다"며 "입학하고 공부하면서 내 마음에 응어리진 부분을 하나하나 내려놓으면서 행복해졌다"고 말했다. 김 씨뿐만 아니라 졸업식의 주인공인 나머지 9명의 졸업생과 이 자리에 참석한 새빛학교 학생 350명은 김 씨의 답사를 들으며 눈물을 훔치기 시작하더니 이내 울음바다가 되고 말았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제때 글을 배우지 못한 어르신들을 위한 학교인 새빛학교가 올해로 43번째 졸업생을 배출했다. 새빛학교는 1987년 개교 이후 지금까지 853명의 학생이 거쳐 갔다.

이날 졸업식에서는 짧게는 3년, 길게는 5년 이상 새빛학교를 다닌 어르신 중 받아쓰기, 읽기, 쓰기 등 졸업시험을 통과한 11명의 어르신이 졸업장을 받았다. 2009년 국립국어원 통계에 따르면 기초 문해력 조사 실시 결과 전국 18세 이상 성인 중 약 1.7%가 글을 전혀 읽고 쓰지 못하고 5.3%가 문장을 이해할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졸업생 대부분은 가난으로 글을 배우지 못했었다고 했다. 하지만, 가난보다 부끄러웠던 것은 글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가족 누구에게도 새빛학교에 다닌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졸업식에도 가족이 함께한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졸업생 박정자(가명'53'여) 씨도 그 중 한 명. 한 번도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박 씨는 "이 나이가 될 때까지 글을 몰랐다는 사실과 인제야 한글을 제대로 쓸 수 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남편과 가족에게도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것을 알리지 않았다"며 "하지만, 글을 알게 됐고 내 삶에 없을 것 같았던 졸업식이란 것을 하게 돼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최고령자인 정상순(가명'71'여) 씨는 졸업식에서 우등상과 백일장 장려상을 받았다. 정 씨는 졸업식이 끝난 뒤에도 울었다. 정 씨는 "새빛학교에서 배운 글로 맨 처음 아들들에게 편지를 썼다. '사랑한다'는 내용이었다. 글을 몰라 칠십 평생 편지로 마음을 전하지 못했다"고 했다. 정 씨는 고희를 넘긴 나이에 새로운 목표도 세웠다. 배우면 배울수록 더 욕심이 생겨 더 배우고 싶어진다고 했다. 정 씨는 "앞으로 영어도 배우고 더 많이 배워 검정고시에도 도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임금미 새빛학교 교감은 "입학시험 때는 자기 이름도 못 써 쩔쩔매던 어르신들이 한글을 깨쳐 성탄절 때 카드를 보내고 졸업까지 하는 모습을 보면서 교사로서 자부심을 느낀다"며 "앞으로도 많은 분이 새빛학교를 통해 배움의 기쁨을 함께 알아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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