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뱃값 인상 법안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법안의 취지는 담뱃값 인상으로 흡연율을 줄여서 국민 건강 증진을 도모하고, 동시에 세수를 늘려 서민 복지 재정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반론의 요지는 담뱃값 인상으로 흡연율이 줄지 않기 때문에 서민 부담만 가중시킨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논란의 초점은 2천 원이라는 인상 폭이 과연 흡연율을 떨어뜨릴지에 맞춰져 있다. 그렇다면, 담뱃값을 올려서 흡연율이 떨어진다면 이 법안은 정당하다는 것인가?
다수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각계에서 법안에 대한 입장 표명이 잇따랐는데, 의사협회는 강력한 지지를 선언했고, 건강보험공단도 지지와 함께 담배회사의 책임까지 언급했다. 다수의 비흡연자는 간접흡연을 피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흡연자 가족은 가족의 건강 증진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으로 법안에 찬성하는 분위기다. 반대 입장을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나선 쪽은 '아이러브스모킹'이란 흡연자 커뮤니티 정도이다. 반대 입장이 대체로 약세다. 숫자 면에서 열세이고, 비흡연자의 입장은 제도적인 권위를 등에 업고 있지만 흡연자의 입장은 동호회 혹은 환우회의 연대에 불과하다. 게다가 요즘은 흡연자라는 정체성 자체가 민폐를 끼치는 나쁜 습관을 청산하지 못한 사람 정도로 자리매김돼 있지 않은가. 그러니 어떤 절차를 거치든 담뱃값은 OECD 선진국 수준을 따라갈 것이다.
담배의 해악이 속속 밝혀지고 있는 지금 어떻게든 담배를 추방하려는 움직임 자체는 옳다. 담배가 완전히 사라지는 사회가 되면 얼마나 국민 건강이 증진되겠는가? 문제는 거기까지 가는 방법인데, 세 가지 정도가 가능할 듯싶다. 첫째는 국가가 담배를 마약으로 지정해 전면 금지하는 것이다. 둘째는 사법부가 폐암 환자의 소송에서 담배회사의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려 스스로 문 닫게 하는 것이다. 세 번째가 담뱃값을 올려 금연을 유도하는 방법이다.
여기서 질문해 보자. 왜 국가는 가장 간단하고 확실한 방법인 담배 파는 자에 대한 규제를 우회하는가? 흡연자의 선택권을 존중해서? 담배 재배 농가와 소매상의 생존권을 염려해서? 그런 염려가 1%라면 담배 자본의 시장 자유에 대한 배려가 99% 아닐까? 만약 담배가 현대의학이 밝혀낸 것처럼 그렇게 해롭고, 그렇게 중독성이 강한 것이라면, 당연히 판매를 먼저 규제해야 한다. 담배보다 중독성이 약한 대마초는 피우는 자보다 파는 자가 더 강한 처벌을 받지 않는가.
혹자는 담배는 마약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흡연자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한다. 담배는 중독성만 놓고 보면 마약이 분명하다. 다만, 환각 작용이 없기 때문에 자기 건강을 해칠 뿐 민폐를 끼칠 확률이 낮아서 방치됐을 뿐이다. 다국적 담배 자본의 이윤을 보장해주는 것도 중독성이다. 흡연자들이 담배가 해로운 것을 알면서도 중독성이 없다면 피우겠는가? 한 조사에 따르면, 70%의 흡연자가 끊을 의사가 있지만 끊지 못하고 있는 것이 흡연의 현실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담배 추방은 판매 규제부터 고려하는 게 맞지 않나? 그럼에도 담뱃값 인상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담배를 추방하는 그 순간까지 담배 자본의 이윤을 보장해 주면서 모든 부담을 흡연자에게 돌려놓겠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적어도 담뱃값 인상이 진정으로 흡연율 감소와 국민 건강을 위한 거라면 세금 대부분을 금연 사업과 흡연으로 인한 질환 치료에 사용해야 한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는 그렇게 한다. 그런데 이번 법안은 세수의 90%가 흡연자와 무관한 서민 지원 사업이다. '흡연율도 줄이고 서민 복지 재원도 마련한다' 는 법안의 취지는 얼핏 흡연자의 건강과 서민의 복지를 동시에 염려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둘 다 우습게 보는 것이다. 흡연율이 떨어지면, 그래서 흡연자의 건강이 개선되면, 서민 복지의 재원은 없어진다. 서민 복지의 재원이 유지되려면 흡연자가 계속 흡연해야 한다. 그러니 부자증세 대신 흡연자 호주머니를 털어 서민들에게 생색 내려 한다는 불만이 나오는 거다. 이번 법안은 사회경제적 약자인 빈자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상황적 약자인 흡연자를 이용해서 부자증세의 부담을 줄이려는 정치적 책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남재일/경북대 교수·신문방송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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