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 속의 인물] 항일 여성운동 정종명

"여자는 한번 결혼하면 그림자도 찾을 수 없다. 우리는 여성운동을 남자에게 의뢰하지 말고 가장 대담하고 용맹 있게 싸워 나아갈 아름다운 희생자의 출현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간호사 출신의 사회주의운동가 겸 독립운동가 정종명(鄭鍾鳴·1895~?)은 항일과 여성해방 활동을 벌인 여걸이다.

가난으로 학업을 중퇴하고 17세에 결혼, 19세 때 남편을 사별한 뒤 세브란스병원 간호부학교를 나와 조산원으로서 사회주의 사상에 빠졌다. 1919년 3·1운동 관련 서류를 몰래 전달하다 들켜 문초를 당했고 독립운동 지원도 했다. 여성 해방을 위해 여자 교육의 필요성과 실력을 키워야 한다며 1922년 오늘 20여 명의 신여성 동지들과 '여자고학생 상조회'를 조직, 주도했다. 소외되고 가난해 학업이 어려운 불우 여성에 대한 교육을 위해서였다.

또한 1927년 2월 신간회가 조직되자 자매단체 성격의 항일 여성운동 단체인 근우회를 5월 서울에서 김활란(金活蘭), 황신덕(黃信德), 최은희(崔恩喜) 등 민족·사회주의계 여성 50여 명으로 만들어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사회주의계 남성과 사랑을 나누다 헤어진 뒤 다시 항일운동가와 결혼을 하는 등 '자유연애' 모습도 보였다. 1930년 3월 발간된 잡지 '별건곤'엔 '능란한 구변과 풍부한 유머, 감상적인 인정미를 가져 약간 얽은 얼굴에도 호감을 갖게 하는 여성운동가'로 소개됐던 인물이다.

정인열<서울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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