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사랑 대구자랑] <14>서문시장

역사화 규모 모두 갖춘 대구 큰장…맛집과 시설로 젊은층까지 유혹

대구 서문시장은 대구의 역사와 함께 한
대구 서문시장은 대구의 역사와 함께 한 '큰장'으로 오랜 세월에 걸쳐 대구 사람들과 함께 기쁨과 슬픔을 같이했다. 대구 사람들의 마음의 고향이자 추억이 깃든 곳이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옛 서문시장
옛 서문시장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이 대구를 찾을 때면 꼭 들르는 곳이 있다. 바로 대구 서문시장이다. 대구경북 민심(民心)을 읽을 수 있는 '바로미터' 역할을 하는 곳이기에 정치인들이 앞다퉈 서문시장을 찾고 있는 것이다.

대구경북 시도민에게 서문시장은 추억이 깃든 곳이자 마음의 고향이다. 그 규모와 역사 등 여러 측면에서 이 지역을 대표하는 시장이 서문시장이다. 서문시장이라는 이름보다 '큰장' 또는 '대구 큰장'이라고 부르는 것만 봐도 서문시장이 차지하는 위상을 쉽게 알 수 있다.

◆수만여 명 삶이 어우러지는 곳

서문시장은 대지면적 3만4천44㎡, 건물 총면적 9만3천70㎡, 매장면적 5만3천799㎡에 점포 수가 4천600여 곳에 이르고 있다. 1지구, 2지구, 동산상가, 4지구, 5지구, 건해산물, 명품프라자, 아진상가 등 8개 지구로 구성돼 있다. 상인 수가 2만여 명에 달하는 큰 시장이다.

주거래 품목은 주단'포목 등 섬유 관련 품목으로 전국적으로도 유명한 원단시장이다. 그 밖에 한복, 액세서리, 이불, 의류, 그릇, 청과, 건어물, 해산물 등 다양한 상품이 거래되고 있다. 서문시장을 찾는 고객이 하루 7만~8만 명에 이를 정도다.

서문시장은 조선시대 평양장, 강경장과 함께 3대 시장으로 꼽혔다. 하지만 임진(壬辰)'정유(丁酉) 양란 이전까지는 대구군 대구읍성 북문 밖에 있는 작은 하나의 읍성 향시(鄕市)였다. 작은 시골 장이었던 셈. 이름도 대구장이라고 했다.

대구장이 획기적으로 커지게 된 것은 경상감영이 대구읍성에 자리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인구의 증가, 낙동강 물길 등을 통한 외부와의 활발한 물적'인적 교류가 늘어나면서 대구장이 자연스럽게 규모가 커지게 된 것.

1677년 대동법 실시로 현물공납을 포와 쌀로 대체함으로써 각종 농산물이 시장으로 몰려들어 시장 기능이 더욱 활성화됐다. 시장 거래량이 늘어나자 북문 밖에 있던 대구장은 17세기 후기에 경상감영 서문 밖(현재 동산파출소 인근)으로 옮겼고, 이때부터 시장 이름도 경상감영 서문 밖에 있다고 해서 서문시장으로 일컬어지게 됐다.

현재의 자리에 서문시장이 들어서게 된 것은 일제의 식민정책과 맞물려 있었다. 일제강점기인 1922년 시장 재정비와 함께 지금 장소로 옮겼다. 내당동, 비산동 고지대에 있던 고분군(古墳群) 흙으로 못을 메우고 시장을 만든 것. 1919년 서문시장에서 '3'8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일제가 정치'경제의 중심이었던 대구부청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시장을 옮기려는 의도가 깔렸었다.

◆전국 첫손가락 꼽히는 '큰장'으로…

한국전쟁 당시 많은 피란민들이 생계유지를 위해 서문시장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다. 1950년대 포목부를 중심으로 시장 주변에 섬유도매상들이 밀집해 전국 최대의 포목시장을 형성했다. 전통적인 섬유도시로서의 이점을 바탕으로 전국에서 가장 큰 의류'포목 도매시장으로 성장했던 것. 1950년대 후반에는 대구의 15개 시장 전체 거래량의 40%를 차지하는 호황을 누렸다. 섬유거래량이 전국의 절반을 차지하는 등 경상도'충청도'전라도의 상권을 움직이는 중심 역할을 톡톡히 했다.

도로망 발달에 따른 유통체계 변화, 서울과 부산에 의한 상권 잠식 등으로 1970년대부터 쇠퇴하기 시작한 서문시장. 여기에 대형마트 공세로 터전을 잠식당하던 서문시장이 최근 들어 새로운 도약을 모색하고 있다.

주차장,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 휴게실, 아이들 놀이방, 수유실, 인터넷방, 여행사, 관광안내센터 등의 고객 편의시설을 속속 갖추는 등 발길이 뜸했던 고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발벗고 나서고 있다. 여기에 대형마트보다 저렴한 가격, 전통시장 특유의 넉넉한 인심을 무기로 옛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상인 모두가 동분서주하고 있다.

20, 30대를 위한 패션매장이 속속 들어서고 젊은 층을 위한 편의시설을 갖추면서 손님도, 상인도 젊어지고 있는 게 서문시장의 새로운 흐름.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50대 이상이 주 고객층이었던 시장이 젊은 층의 패션 메카로 자리 잡으면서 20, 30대 고객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칼국수, 수제비 등 단순 식사 위주의 노점상들이 최근 들어서는 생과일주스, 토스트 등 젊은이들의 입맛을 겨냥한 먹을거리를 앞다퉈 내놓고 있다.

서문시장은 대구의 역사와 함께 한 '큰장'으로 대구 사람들과 함께 기쁨과 슬픔을 같이했다. 서문시장에 큰 화재가 나면 나의 일인 양 대구 시민 모두가 안타까워했고 시장 상인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힘을 보탰다. 상인들만의 시장이 아닌 대구 시민 모두의 삶이 어우러진 공간이기에 아픔을 같이하고 힘을 실어준 것이다. 서문시장이 전국에서 첫손가락 꼽히는 '큰장'으로 다시 올라서기를 대구 시민들이 간절히 바라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