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사각지대에 방치된 환자들을 찾아 전 세계로 뻗어가는 한국 의사들이 있다. 체계적인 의료 서비스가 정착되지 않은 동남아시아 오지 마을을 찾아 구순구개열 장애 환자들을 무료로 수술해 주며 새 희망을 선물하는 의료진들. 지난달 이들과 함께 베트남 라오까이를 찾았다.
◆환자 62명, 새 희망을 얻다
베트남 라오까이(Lao Cai)성 라오까이시. 수도 하노이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꼬박 8시간 달려야 도착하는 베트남 북쪽의 가장 끝으로, 중국 쿤밍(昆明)과 마주 보고 있는 국경지대다.
지난달 24일, 한국 의료진들은 아직 개소식도 하지 않은 라오까이주립병원(이하 라오까이병원)을 찾았다. 이들은 전국 병원에서 모인 성형외과와 마취과, 치과 전문의들과 간호사로 구성된 의료봉사단인'인지(인도차이나) 클럽'으로 16년째 베트남과 라오스에서 무료 수술 봉사를 하고 있다. 언청이라 불리는 구순구개열 환자들을 수술하기 위해 국제의료구호단체인 '글로벌케어'와 함께 인지클럽 소속 의료진 등 20여 명이 6박 7일간 베트남에 머물렀다.
한국 의사들이 온다는 소식에 오토바이를 타고 수십 ㎞를 달려온 환자들이 병원 1층 진료실 앞에 발 디딜 틈 없이 서 있었다. 이날 진료를 본 환자만 100여 명. 구순구개열 장애와 화상 환자 62명이 최종 수술 명단에 올랐다. 환자들도 다양했다. 입천장이 갈라진 6개월 된 사내아이, 전기에 감전돼 엄지와 검지가 붙어버린 아이, 갈라진 입술 사이로 치아가 흉측하게 삐져나온 30대 여성도 있었다. 이날 5살 난 언청이 환자를 살펴보던 경북대병원 마취과 김시오 교수는"입천장이 갈라지면 먹을 때마다 음식물이 코로 나온다. 이 아이가 겉보기엔 멀쩡해도 밥 먹을 때마다 생활이 얼마나 불편했겠느냐"며 안타까워했다.
베트남에서 6세 이하 아동의 언청이 수술은 전액 무료다. 하지만, 이 연령대에 수술을 받는 환자들은 라오까이에서 극히 드물다. 국가에서 지정한 병원이 하노이 같은 대도시에 몰려 있어 생계가 우선인 주민들은 수술을 아예 포기하고 만다. 하노이에서 주로 활동했던 인지클럽이 지난해부터 라오까이까지 들어간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주대병원에서 연수 중인 베트남 성형외과 의사 응웬 투 짱(31'여) 씨는 "라오까이처럼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교통비 등 여러 비용이 부담돼서 병원까지 가보지도 못하고 수술을 포기한다. 이곳 사람들이 한국 의사들이 오기만 손꼽아 기다리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언청이 원인은 아직 정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전문가들은 낮은 생활수준과 유전적 요인 등 다양한 요소가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있다. 과거 우리나라에도 많았던 언청이 환자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은 무엇일까. 아이디성형외과 현원석 원장은 "외모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우리나라에서 산전 검사를 할 때 태아의 언청이 장애가 발견되면 수술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며 "언청이 환자가 줄어든 것은 자연적으로 줄어든 것이 아니라 이 아이들이 엄마 뱃속에서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아서다"고 말했다.
◆새 얼굴로 새 삶을 찾다
수술받은 환자들의 사연도 제각각이다. 언청이 환자 꾸언(8) 군은 엄마 팜 티 쿠옌(38) 씨의 손을 잡고 병원에 왔다. 꾸언은 이번이 세 번째 수술로 다른 환자들보다 사정이 나은 편이다. 8개월과 20개월 때 하노이 큰 병원에서 수술을 두 차례 받았지만, 입술 모양은 여전히 어색했다. 수술 횟수가 늘어난다고 해서 두려움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는 인사를 하는 기자의 눈을 쳐다보지 않고 엄마 손을 만지작거렸다. 쿠옌 씨는 아들을 오토바이 뒤에 싣고 32㎞를 달려와 수술을 받았다."환자 나이가 6살이 넘으면 수술비는 모두 자부담이에요. 세 번째 수술은 거의 포기하고 있었는데 의료봉사팀이 온다고 해서 단숨에 달려왔어요. 꾸언이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한 외모로 자랄 수 있다면 이제 아무것도 바랄 게 없어요."
라오까이시에서 차로 2시간 정도 걸리는 오지 마을 사파(Sapa)에서 온 세살배기 언청이 환자도 있었다. 제대로 씻지 못해 온몸에 새까맣게 때가 껴 있어 의료진들이 아이의 온몸을 알코올로 닦아냈다. 이 환자를 수술한 삼성서울병원 성형외과 임소영 교수는"제대로 된 병원 하나 없는 사파에서 온 이 아이가 우리를 만나지 못했다면 평생 수술 한 번 받지 못했을 것 아니냐"며 "대도시보다 도시 외곽으로 의료팀이 가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의료진들도 미소를 찾은 환자들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 언청이 환자를 직접 수술한 영남대병원 성형외과 김용하 교수는 "예전에 우리나라도 베트남처럼 언청이 환자가 아주 많았고 한국전쟁 당시 미국 군의관 밀라드가 수많은 환자를 수술했다. 우리의 활동은 어려운 시절 한국이 받았던 도움을 필요한 곳에 돌려주자는 의미도 담고 있다"고 밝혔다.
베트남 라오까이에서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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