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샛별과 멘토 세대공감] 대를 이은 첼리스트 부자 박창근 교수와 박성찬

아버지와 아들 사이는 어머니와 딸과의 관계처럼 마냥 다정스럽지만은 못하다. 아들에게 아버지는 항상 든든한 산이자 언덕이면서, 한편으로는 넘어서고 싶은 욕망이 함께하는 미묘한 관계다. 하지만 그 밑바닥에는 끈끈한 유대감이 넘쳐 흐른다. 험난한 세파와 싸워 이겨가며 가족을, 가정을 지켜내고, 자신의 꿈을 실현해가는 아버지란 존재를 세상의 아들들은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더디긴 하지만 더욱 깊게 이해하게 된다.

박창근(60) 안동대 교수와 박성찬(32)은 첼리스트라는 같은 직업을 가진 부자 사이다. 더구나 성찬 씨는 최근 '새로운 스타일, 노바 2세대'(New Style-NOVA Second Generation)를 내세운 '노바 솔로이스츠'라는 2세대 젊은 연주자들이 한데 뭉친 앙상블을 만들고 첫 연주회를 가졌다. 아버지 박창근 교수를 단장으로 영남지역의 대표적인 클래식 연주단체로 손꼽히는 '노바앙상블'의 뒤를 이은 것이다. 역사, 연륜의 가치보다는 늘 새로운 것만 추구하는 우리네 풍토 속에 대를 이은 앙상블을 만든다는 것은 흔치 않은 도전이다.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는 부자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뭔가?

박창근= 9남1녀 대가족에서 자랐다. 워낙 식구가 많아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다 보니 중학교를 졸업하고 1년을 쉴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 드럼을 접하게 됐다. 이후 고등학교에 복학할 시기가 왔는데 아무래도 일반계고를 가기는 쉽지 않을 것 같고, 그러다 선택한 곳이 예고였다. 첼로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접했고, 남들보다 상당히 늦게 시작을 해 고생을 많이 했다.

박성찬=부모님이 모두 음악을 전공하신 분이지만 원래 음악을 좋아하지 않았고 오히려 운동에 흥미가 많았다. 그러던 중 중학교 3학년 때 영화 '샤인'을 보고 음악에 매료됐다. 피아노를 하고 싶었지만 너무 늦게 시작하기는 힘든 악기라는 생각에 첼로를 선택하게 됐다.

▶같은 음악의 길을 걷는 데 대해 부모님은 어떤 입장이었나?

박성찬=처음에는 두 분 모두 반대했다. 음악을 시작하기엔 늦은 나이이다 보니 걱정이 많으셨다. 예고에 진학하고 나자 어머니께서 많은 지원을 해주셨다.

박창근=너무 어려운 길로 아들을 떠밀고 싶지는 않았다. 남들보다 늦게 음악을 시작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더욱 말리고 싶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예전과는 다르게 음악에 집중하는 아들을 느낄 수 있었고 더 이상 말릴 수는 없었다.

▶늦게 음악을 시작한 만큼 남다른 노력이 필요했을 것 같다.

박성찬=예고에 진학하고 보니 '실력'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남들보다 뒤져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다 보니 승부욕이 발동했다. 서울을 오가며 최고 톱 클래스로 손꼽히는 애들을 목표로 두고 따라잡기 위해 하루 12시간씩 연습했다. 당시 아파트에 살았는데 오전 3, 4시까지 첼로를 켰다. 아마 워낙 형편없는 실력이라 들어주기도 힘들었을 텐데 불평 없이 참아 준 당시 아파트 윗집, 아랫집 분들께 정말 감사드린다.

박창근=아내의 성화에 아들을 직접 레슨하면서 도를 닦는 기분이었다. 원래 부모가 자기 자식 가르치기는 무엇보다 힘들다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5분을 못 넘겼던 레슨이 10분을 넘어서고 30분이 되고 1시간이 되는 동안 나 역시 많은 공부를 했다고 생각한다.

▶아들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같은 '노바'라는 이름을 가진 2세대 연주단체를 만들었다. 부담스럽지 않았는가?

박성찬=노바 솔리스츠 멤버 중 바이올리니스트 김현수와 함께 오스트리아에서 공부하면서 한국에 가면 꼭 함께 연주단체를 만들자는 약속을 했던 게 5, 6년 전이었다. 그리고 그때 부모님 세대를 이어 '노바'라는 이름으로 연주를 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나눴었다. 수없이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그런 앙상블이 아니라 꾸준히 이어지는 연주단체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지역에서 가장 오랜 세월을 이어온 그 이름을 물려받고 싶었다. 어른들이 지켜보고 계실 테니 스스로 목줄을 단다는 의미랄까.

박창근=아이들이 이런 이야기를 미리 나눴을 줄은 몰랐다. 오히려 어른들끼리 모여서 '리틀 노바'를 만들어볼까 하고 궁리를 했던 시절도 있었다. 어른들이 구심점이 돼서 한데 모아주면 아이들에게 작으나마 힘이 되지 않을까라는 바람을 가졌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이 와서 '노바'라는 이름을 써도 되느냐고 허락을 구하더라. 흐뭇했다.

▶서로에게 앞으로 바라는 점이 있다면?

박창근=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이고, 음악인들에게 역시 미래가 불투명한 시기다. 실력은 출중한데도 기회를 갖지 못하는 음악인들이 너무 많다. 앞으로 아들이 어떤 모양의 삶을 살든 많은 음악인이 자신의 재능을 썩히지 않고 기회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고, 다음 세대를 위해 좋은 영향을 많이 끼칠 수 있는 그런 음악인이 되길 바란다.

박성찬=언제까지나 '음악인'으로 남아주셨으면 좋겠다. 계속 활동을 이어가셔서 나중에 내 아들이 음악을 할 때도 음악계의 큰 어른으로 남아계신다면 정말 좋겠다. 아버지는 제게 영원히 공부해야 할 큰 산과도 같은 존재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박창근(60)

영남대학교 및 동대학원 졸업

대구시립교향악단원 역임

대구노바 현악합주단원 역임

안동대학교 예술'체육대학장 역임

현 안동대학교 교수 및 안동교향악단 지휘자

박성찬(32)

오스트리아 Moz Arteum음악대학 학사 및 동대학원 석사

벨기에 앤드워프 왕립음대 최고 연주자 과정 수석 졸업

부산콩쿠르 입상

시칠리아 국제 앙상블콩쿠르 파이날리스트

현재 유럽 및 국내 협연, 독주회 등 연주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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