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개나리가 아직 활짝 피어 있는 안동시 남선면 현내리. 야트막한 야산 비탈에 들어선 작업장 밖에서 하얀 위생복을 입은 청년들이 여기저기에서 '엄마' '엄마'라며 부른다. 일하러 가던 '엄마'도 이름 하나하나를 부르며 정답게 인사를 건넨다. "재미있니? 힘들지는 않아?" 어떤 이들은 손짓으로 아는 체를 한다. 수화(手話)다. 이런 풍경은 이종만(59'목사)'김현숙(55'직업재활교사) 씨 부부에게는 벌써 30여 년째 이어지는 일상이다. 국내 첫 부부 수화통역사로서 '가슴으로 낳은 아이들'과 평생을 함께해 온 삶이다. 20일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올해 호암상(湖巖賞) 사회봉사상 수상자로 선정된 이 씨 부부를 만나봤다.
◆장애인의 '입과 귀'
장애인 복지 향상에 헌신해 온 이 씨 부부는 안동의 한 교회에서 전도사와 주일학교 교사로 처음 만났다. 국내에서 손꼽을 정도로 농아인들에 대한 전도 역사가 깊은 교회였다. 이 씨는 '문제를 제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에 스스로를 던지겠다'는 포부를 갖고 그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고, 김 씨는 특수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부부는 닮는 것일까? 아니면 닮은 사람이 맺는 인연일까? 장애인들과의 삶에 대해 두 사람은 한목소리로 답했다. "하나님이 왜 저희는 보고 듣고 말할 수 있게 하셨는지에 대한 의문이 첫 출발이었습니다. 결국 혼자 즐기라고 건강을 주신 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됐죠. 비록 말을 못 하거나 지적 능력이 부족한 아이들이지만 저희에게는 모두 멋있고 예뻐 보이기만 합니다."
1987년 결혼한 이 씨 부부는 그해 8월 안동에서 처음으로 '사랑의 수화 교실'을 열어 지금까지 교육을 하고 있다. 대학'관공서 등에서 열리는 강좌를 통해 수화를 보급하는 한편 수화 통역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청각'언어장애인들의 입과 귀 역할을 해왔다.
"장애인의 자녀들은 자칫 삐뚤어지기 쉬워요. 어릴 때부터 많은 관심과 애정이 필요하죠.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부터 진학, 병역 문제, 취업, 결혼까지 신경을 써 줘야 합니다. 아이들 소풍이나 운동회에서 삼촌'이모 역할을 해준 건 헤아릴 수도 없고, 주례도 50번은 넘게 선 것 같네요. 허허허."
이 목사는 자신의 롤모델로 고(故) 김인수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를 꼽았다. 세계적 경영학자이면서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을 주도해온 김 전 교수는 신행(信行)일치의 표본으로 꼽힌다. 그의 부인 김수지 전 서울사이버대 총장 역시 '한국의 나이팅게일'로 불린다.
"김 전 교수님은 참으로 아름다운 삶을 사신 분입니다. 제가 안동으로 초청해 세미나를 열기도 했고요. 그런 분에 비하면 저희는 정말 해놓은 게 없어 부끄럽습니다." 겸손하게 말했지만, 자신의 몸으로 낳은 아이를 편애할까 봐 아이도 낳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이 씨 부부는 호암재단의 전신인 삼성복지재단이 1990년 호암상을 제정한 이래 첫 부부 공동 수상자다.
◆장애인 자활 위해 사업장 차려
경영에 대해선 전혀 경험이 없었던 이 씨 부부는 1994년 봉제사업에 뛰어들었다. 장애인의 자활'자립을 위한 의류봉제공장인 '나눔공동체'의 시작이다. 야간 열차로 상경, 구로공단 등지를 찾아다니며 겨우 직장을 구해준 장애인들이 얼마 안 돼 형사사건에 휘말리거나 성폭행을 당하는 경우가 많아 너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지방 중소도시에서 장애인이 일자리를 갖는다는 건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임금을 제대로 못 받는 경우도 제법 있죠. 그래서 장애인들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줘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사업 자금은 집사람의 퇴직금이었고요."
하지만 봉제공장은 이내 난관에 부닥쳤다. 외환위기가 결정적이었다. 일감이 3분의 1로 줄어들면서 빚이 3억7천만원이나 됐다. 80명이 넘던 공장 식구들도 완전히 거리에 나앉게 될 판이었다.
"앞이 캄캄하더군요. 저희가 잘살겠다고 낸 빚도 아니었는데…. 결국 야반도주를 결심했습니다.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친구에게도 미리 연락해뒀죠. 그러나 차마 떠날 수는 없었습니다. '목사가 일 벌이더니 꼴 좋다'는 비난도 싫었지만 저희만 믿고 따라준 장애인들을 버린다는 건 정말 힘들었죠. 그때 일을 저질렀으면 어찌 됐을까, 지금 생각해도 무섭기만 합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란 말은 이 씨 부부에게도 들어맞았다. 백방으로 노력한 결과 1999년부터 다시 일감이 늘고, 대기업에도 납품하게 되면서 빚은 줄어들었다. 눈물을 머금고 내보냈던 옛 직원들도 다시 일하게 됐다.
그때 이 씨 부부는 '우리가 죽더라도 장애인들이 스스로 살 수 있는 길을 마련해 두자'는 결정을 내렸다. 전 재산을 털어 2002년 6월 사회복지법인 '유은(唯恩)복지재단'을 설립했다. 경상북도에서 처음으로 허가를 받은 장애인근로사업장이었다.
사업 분야도 바꿨다. 국내 봉제산업이 동남아시아 등 저임금 국가에 밀리면서 경쟁력을 잃었기도 했지만 장애인들에게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이었다.
"혹시 '나나인치'라는 말을 아십니까? 단춧구멍을 만드는 일인데 제 '전공'이었죠. 지금도 그 기술로는 밥 굶지 않을 자신이 있어요. 집사람 역시 1급 재봉사이지요. 하지만 봉제는 손이 입, 눈이 귀 역할을 하는 청각장애인들에게 맞지 않아요. 대화를 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이리저리 알아보다가 우연히 새싹채소 재배를 알게 돼 도전하게 됐습니다. 무식하니까 용감했던 것 같네요."
◆상금은 작업환경 개선에 쓸 생각
이 씨 부부가 장애인들과 꿈을 일궈가고 있는 '나눔공동체'(www.nanum21.org)는 장애인직업재활시설이다. 일반 고용이 어려운 장애인이 특별히 준비된 작업 환경에서 직업 훈련을 받거나 직업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곳이다. 현재 이곳에는 청각'지적장애인 54명, 새터민 1명, 어르신 7명 등 모두 76명이 일한다.
"이곳의 특징 중 하나는 장애인들도 관리자로 일한다는 것입니다. 지체장애'청각장애'뇌병변장애가 있는 직원 4명이 팀장'조장을 맡고 있어요. 물론 4대 보험, 퇴직금 적립, 최저임금도 보장하지요. 보통 사람들처럼 해외 연수도 자주 갑니다. 그래서인지 저희 회사에 취직하고 싶다는 문의가 끊이지 않아요."
2005년 상표등록한 '초록이슬새싹'이란 브랜드로 생산하는 품목은 새싹(sprouts)'어린잎(baby leaf)'콩나물 및 새싹국수'비누 등이다. 경상북도지사'산업자원부 장관(이상 2007년) 표창에 이어 지난해에는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2008년에는 노동부에서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으며, GAP(우수농산물)'친환경'ISO 22000 인증도 받았다. 911㎡(276평) 규모의 새싹 재배시설과 936㎡(283평)의 비닐하우스 3동, 항온'항습'항균 시스템, 에어샤워기 등 위생시설을 갖췄으며 하루에 2.5t의 새싹을 생산한다.
"사실 초기에는 판로 개척이 힘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부탁해서 파는 경우가 많았죠. 하지만 지금은 정정당당하게 품질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2004년 매출액이 5억원에 못 미쳤는데 지난해는 23억원이 넘었습니다. 봉제공장 시절보다 작업환경이 좋아지면서 직원들의 정서도 훨씬 밝아진 것도 물론 빼놓을 수 없겠죠."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면서 다음 달에 호암상 상금 3억원을 받으면 뭘 할 예정이냐고 넌지시 물었다. 이 목사는 사람 좋은 웃음을 터트리며 "뭘 하면 좋겠느냐"고 되묻더니 "장애인들의 편의를 위해 작업 동선을 바꿀 생각"이라고 잘라 말했다. 예전 봉제공장 시절 시설을 활용한 터라 장애인들의 이동에 불편한 점이 있다는 설명이었다. 돌아오는 길 내내 '아직 세상은 희망을 가질 만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글'사진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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