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적인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현지 의사들이 '실력'을 갖추는 일이다. 지역 병원들은 현지 의사들을 한국에 초청해 의료 기술을 전수하는 것은 물론 지속적인 단기 의료 봉사로 한 나라와 '정'을 쌓아 의료 관광으로 돌려받는 열매까지 맺고 있다.
◆수술도 '협업', 현지 의사에게 기술 전수
"Dr. Bang. Can you sew here?"(닥터 방, 여기 꿰맬 수 있어요?)
지난달 26일 베트남 라오까이성 라오까이시 라오까이주립병원 3층 수술실. 경북대병원 성형외과 조병채 교수의 말에 이곳 병원 의사인 팜 하 방(34)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있던 이비인후과 전문의 부 쿼이 휘(47) 씨도 수술을 거들었다. 이날 환자는 어린 시절 입은 화상으로 오른쪽 손가락이 굽혀지지 않는 10대 환자. 손가락에 철심을 박고, 접합 부위에는 왼쪽 허벅지 안쪽에서 떼낸 살을 이식했다.
이들은 지난해 가을 처음 조 교수와 인연을 맺었다. 국제의료구호단체인 '글로벌케어'와 인지클럽 소속 의사들이 매년 5~7명 베트남과 라오스 의사들을 초청해 무료로 의료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도움으로 방 씨와 휘 씨는 지난해 9월부터 석 달간 경북대 성형외과에서 연수를 받았다. 현지 생활비는 글로벌케어에서, 이들의 숙소는 경북대에서 기숙사를 무료로 제공했다. 훗날 이들이 한국과 베트남 의료의 '가교 역할'을 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라오까이 성에는 60만 명 정도가 살고 있지만 성형외과 전문의가 단 한 명도 없다. 방 씨는 정형외과, 휘 씨는 이비인후과 전문의로 성형외과와 거리가 멀지만 한국 성형외과에서 연수를 한 것도 이 때문. 방(34) 씨는 성형 수술은 라오까이 지역에 꼭 필요한 수술이라고 말한다. "이곳에서는 영양 부족으로 세균에 감염돼 온 얼굴이 썩어버린 아이들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형외과 전문의가 없어 항상 한국 의료팀이 오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어요."
방 씨는 피부이식과 화상 치료에, 휘 씨는 구순구개열 환자 수술에 관심이 많다. 휘 씨는 대구에서 돌아온 뒤 언청이 환자 두 명을 직접 수술하기도 했다. 그는 "이 지역에는 생활수준이 낮은 소수 민족들이 많은데 자녀가 언청이라도 수술하지 않고 평생을 사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 좋은 의사들을 만나 새로운 수술 방법을 많이 배웠고 지금 지역 환자들을 수술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 나라, 한 지역 집중 의료봉사
한 나라와 집중적으로 연을 맺고 현지에 병원까지 세우는 곳도 있다. 카자흐스탄 알마티에는 '알마티동산병원'이 있다. 미국인 선교사가 세운 계명대 동산의료원은 "외국 선교사에게 진 빚을 갚아야 한다"는 취지로 1996년 카자흐스탄에 병원을 세웠다. 또 최근에는 해외 원격 의료까지 진행 중이다. 알마티동산병원에 원격의료센터가 생긴 뒤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오지 않아도 현지인들이 한국 의사들의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
동산의료원은 또 의료와 문화를 연결시키는 전략을 쓰고 있다. 이 병원은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네팔 카트만두에 피부전문클리닉인 동산특수진료소를 운영했다. 매년 여름 한국에 있는 네팔 학생들과 근로자, 주한 네팔대사를 초청해 네팔 전통 민속 무용 공연과 만찬을 준비하는 '네팔의 밤'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말이 서툰 네팔인들을 위해 무료로 한글을 가르치는 등 현지에서 도움을 주며 두터운 '정'을 쌓고 있는 것. 동산의료원 박문희 홍보팀 계장은 "한국네팔협회 회원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네팔인들을 위해 무료로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며 "한국에 좋은 감정을 가진 네팔인들이 늘어나면 한국 의료 기술의 장점을 널리 알리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구가톨릭대병원 의료봉사팀은 해마다 필리핀 '빠야따스' 지역을 찾는다. 이 지역은 마닐라 인근 쓰레기 매립지인 빈민촌으로 주민들은 쓰레기 더미에서 재활용품을 수거해 근근이 살아간다. 이러한 환경 탓에 위생 상태가 나빠 주민 대부분이 결핵을 앓고 있다. 2008년부터 이 지역에 단기 의료봉사팀을 파견해 지난해에도 의료진 40여 명이 주민 2천여 명을 진료하기도 했다.
영남대의료원은 각각 봉사팀별로 해외 의료봉사를 떠나고 있다. 기독의료봉사회는 1999년 필리핀 민다나오 섬을 시작으로 2004년 네팔 포카라와 치트안 지역, 올해 1월에는 캄보디아의 오지 씨스폰에서 의료 봉사를 펼쳤다. 또 불교신도들의 모임인 불교신행회는 주로 몽골과 네팔 카트만두 인근 빈민촌 고등학교처럼 의료 사각지대를 찾아 봉사를 하고 있으며, 가톨릭교우회도 중국 연길과 우즈베키스탄 등에서 현지 주민들을 진료했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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