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4월! 영국의 시인 엘리엇이 '황무지'라는 시에서 썼던 말이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시체들로 뒤덮여 있는 땅에서 새싹과 꽃들이 피어나는 광경을 목격한 엘리엇은 그 충격을 '잔인한 4월'이라고 표현했다. 이 말대로 올해 4월은 유난히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북한의 김정은은 전 세계에 전쟁 위협이라는 심리적 테러를 가하고 있고, 미국 보스턴의 마라톤 축제장에서는 9'11의 악몽 같은 테러가 자행되었다. 중국 쓰촨성에는 또다시 대지진의 재앙이 발생했다. 한마디로 지구촌을 벌집 쑤셔놓은 듯한 4월이다.
폭력으로 인명을 살상하는 테러리즘이라는 말은 프랑스 혁명 때 자코뱅당의 공포정치를 일컬어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행위는 이미 구약성서의 창세기 때부터 시작되고 있다. 아담과 이브의 두 아들 가운데 농부였던 카인은 야훼가 자신의 제물보다 목동인 동생 아벨의 제물을 더 기쁘게 받자 아벨을 질투하여 살해함으로써 인류 최초의 테러를 저질렀다. 구약성서대로라면 형제간 살인이라는 비극적 친족 살상의 폭력이 인류의 시작과 더불어 이렇게 인간의 원죄로 정착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평화를 구현해야 하는 종교가 반목으로 인해 테러와 전쟁의 근본 원인이 되고 있으니 어찌 아이러니라 아니할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 테러리즘은 모권(母權)시대의 잔재인 신라 원화(源花)에서 볼 수 있다. 각기 300여 명씩의 청소년을 거느린 원화 준정(俊貞)은 라이벌 원화인 남모(南毛)를 유인 살해하고, 이를 알게 된 남모파의 청소년이 준정을 살해함으로써 모권시대를 종식시키고 있다.
이처럼 테러는 파멸을 자초한다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의 역사로 교훈이 되어 내려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이지 않는 테러는 집단 또는 개인 간의 탐욕 때문이다. 부처님 말씀 중에 "탐욕은 독초와 같고 치열한 불꽃과도 같다. 마치 불나방이 죽을 줄도 모르고 훨훨 타오르는 불을 보고 달려드는 것과 같다"라는 가르침이 있다.
개인 간, 국가 간, 종교 간에 각각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하는 것인데, 자기중심적 탐욕은 자비의 눈을 가려 불나방의 테러리즘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어리석은 중생들의 탐욕주의는 어쩌면 생멸을 거듭해야 하는 우리 인류의 업보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올 4월에는 자연까지도 잔인하여 철 늦은 눈에 고사리 꽃잎 내밀던 목련은 된서리 맞은 듯 시들어 버리고, 때아닌 눈에 홍역을 치른 벚꽃은 그 빛을 잃어 버렸다.
그렇다고 마냥 뒷짐만 지고 있을 수는 없는 일! 봄이 오면 풀은 절로 푸르나니 파스텔 톤의 산벚꽃과 복사꽃의 아름다움도 있다. 연분홍 치마가 휘날리는 4월의 끝자락으로 봄날은 온다. 무자비한 테러가 있다면 우리에겐 유자비한 사랑이 있다. "싸워서 이기면 원수와 적만 더 늘어나고 패하면 괴로워서 누워도 편치 않다. 이기고 지는 것을 다 버리면 잘 때나 깨어 있을 때나 편안하리니."
지거 스님. 동화사 부주지·청도 용천사 주지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