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란 불현듯 왔다가 속절없이 가곤 하는 것이지만, 올봄처럼 봄 같지 않은 봄도 드물 것이다. 그야말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시나브로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린 것은 약과이고, 기온이 영하로 곤두박질치거나 백설(白雪)까지 분분했으니 벚꽃이 모양 좋게 질 겨를조차 없었다.
벚꽃은 피었을 때도 화려하지만, 바람결에 눈 내리듯 한꺼번에 질 때도 아름답다. 일본인들은 여기서 사무라이 정신을 읽으며 벚꽃 미학(美學)에 심취한다. 우리가 화사하게 피어나는 벚꽃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불편한 것은 바로 벚꽃에 내재된 이 왜색(倭色) 정서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벚나무는 원래 한반도에서도 자생을 했고, 일본정신의 상징인 사무라이의 원조 또한 한반도에서 비롯된 것이니 애써 거부감을 느낄 필요는 없을 듯하다.
오래전 '한국이 죽어도 일본을 못 따라잡는 18가지 이유'라는 책을 출간해 화제를 모았던 모모세 다다시(百瀨格)란 일본인이 재미있는 일화를 털어놓은 적이 있다. 자신의 성씨에 百자가 들어 있는 까닭에 한국인 친구들이 백제(百濟)의 후예일 것이라는 지적에 부여를 애써 찾았다는 것이다.
백제의 수도였던 부여에서 '계백장군'의 동상을 발견하고, 그곳에 새긴 설명문을 읽은 그는 '계백장군과 5천 결사대'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결사대의 마지막 항쟁에서 '확 피었다가 확 지고 마는 벚꽃'으로 상징되는 일본 사무라이 정신의 원류를 발견한 것이다.
톰 크루즈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의 최후 전투장면도 벚꽃을 떠올린다. 사무라이의 명예와 가치를 지키기 위해 신식군대에 결사항전하며 한꺼번에 스러져가는 모습을 벚꽃의 미학으로 형상화했다.
나오키상(直木賞)을 수상한 아사다 지로(淺田次郞)의 원작을 영화화한 '바람의 검-신선조'는 한 시골 무사의 비장한 삶을 그린 작품이다. 이 영화가 주는 감동은 무사의 현란한 칼솜씨가 아니라, 가족을 향한 애틋한 사랑과 명예로운 죽음 때문이다.
그리고 무너져 가는 막부에 대한 마지막 의리와 무사의 명예를 위해 사지(死地)로 뛰어드는 최후의 사무라이 모습에서 우리는 일본에 대한 좋지 못한 감정조차 내려놓고 감흥하는 것이다.
일본 아베 내각의 침략 망언으로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인들의 속이 또 부글부글 끓고 있다. 진정한 사무라이 정신은 이웃을 능욕하고 남의 나라를 침탈하고도 오리발을 내미는 것이 아닐진대… 꼴사납게 지는 것은 벚꽃이 아니다. 스스로의 미학조차 저버리는 일본 우익세력의 행태에 올봄도 이래저래 춘래불사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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