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을 다른 말로 해어화(解語花)라 부르는 것을 아십니까?
말귀를 잘 알아듣는 꽃이란 뜻입니다. 이 해어화들은 조선의 전통 궁중가무 개척자들이요, 선구자였습니다.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전역에는 권번이 개설 운영되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서도 평양권번의 명성은 드높았습니다.
우리가 오늘 다시 떠올려 보고자 하려는 기생출신 가수 선우일선(鮮于一仙)도 평양 기성권번 출신입니다. 1918년 평양에서 태어난 선우일선은 온화한 성격에 비단결처럼 부드럽고, 윤기가 자르르 느껴지는 목소리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마치 옥을 굴리는 듯 고운 선우일선의 어여쁜 성음에 반한 남정네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지금은 누렇게 변색된 당시 가사지와 유성기 음반의 상표를 통해 선우일선의 생김새를 짚어봅니다. 얼굴은 동그스름한 계란형에 머리는 쪽을 쪄서 한쪽으로 단정하게 빗어 넘겼군요. 눈썹은 제법 숱이 많고 검습니다. 그 밑으로 가장자리가 아래로 드리운 눈매는 선량한 성격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그 눈은 방긋 미소를 머금고 있습니다. 마치 봄비에 젖은 복사꽃잎처럼 말입니다.
아담하게 얼굴의 중간에 자리 잡은 코는 얼굴 전체의 윤곽에서 안정과 중심을 유지하면서 분위기를 살려줍니다.
인중은 다소 짧아 보이는데, 그 입술의 선은 얼마나 어여쁜지 모릅니다. 아래위 입술은 부드럽게 다물려 있습니다만 그것이 결연한 함구(緘口)가 아니라는 사실을 압니다. 전반적으로 은은한 느낌을 주는 선우일선의 용모는 보면 볼수록 가슴 설레고 서늘해집니다. 하얀 깃 동정을 곱게 달아 여민 목선이 아름답고, 저고리는 부드러운 흑공단으로 지은 듯합니다.
자, 이만하면 1930년대의 기생가수 선우일선의 용모가 충실하게 전달이 된 것 같습니다만 아무리 생각해도 직접 만날 수 없는 아쉬움은 미련처럼 가슴에 오래오래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선우일선의 그 은쟁반에 옥구슬 굴리는 듯한 노랫소리를 한 번 들어보아야겠습니다.
독일 계열의 레코드사였던 폴리돌은 1931년 서울에 영업소를 설치합니다. 그리고 1932년 9월부터 조선의 음반을 만들게 됩니다.
당연히 한국인 가수가 필요했지요. '황성옛터'의 노랫말을 지은 왕평과 여배우 이경설이 문예부장을 맡았습니다.
당시 폴리돌에서는 조선 전역을 돌아다니며 가수를 모집했습니다. 평양기생 출신의 선우일선도 이 무렵 발탁이 된 것입니다. 선우일선은 1934년 폴리돌레코드사를 통해 가수로 정식 데뷔했습니다. 이때 데뷔곡은 시인 김안서 선생의 시작품에 작곡가 이면상이 곡을 붙인 '꽃을 잡고'였습니다. 이 노래는 이제 신민요의 고전으로 기록될 만한 작품이란 평판을 받습니다.
작사가이자 뮤지컬 작가였던 이부풍 선생의 증언에 의하면 선우일선의 목소리는 "마치 하늘나라에서 옥퉁소 소리를 듣는 듯했다. 그녀의 아름답고 청아한 음색은 신민요라는 경지를 한층 더 밝혀주었다"고 했습니다.
영남대 국문학과 교수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