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야기 속으로] 봄비-우산 잃어버려 눈물, 지금은 아련한 추억

유난히 비가 잦은 올해 봄에는 학창시절 우산을 많이도 잃어버려 울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매번 우산을 잃어버리고, 우산을 찾느라 버스를 놓치고, 집에 늦게 들어가게 되어 혼나고, 우산을 잃어버려 혼나고…. 어쩌면 슬픈 추억일지도 모를 일이 시간이 지나고 돌이켜보니 그저 어릴 적 평범한 일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날도 비가 내렸다. 처마 밑에서 울고 있던 한 여자 아이를 보았다. 다가가 왜 울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말없이 고개만 떨군 채 눈물을 흘렸다. 아이 옆에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같이 있었다. 나중에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은 우산을 잃어버려 집에 갈수가 없다는 거였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려 했지만 아이 앞에서 내색은 하지 않았다. 사실 나는 그 순간, 예전의 나를 보는 듯했다.

조심스레 아이에게 이런저런 걸 물어보고 대화를 이어갔다. 아이에게 어릴 적 나도 우산을 잃어버리고 결국 버스도 놓치고 혼이 났던 추억을 이야기했더니 아이의 표정은 한결 밝아졌다. 아마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이리라.

아이의 손을 잡고 근처 문구센터에 가서 작은 우산을 하나 사줬다. 아이는 고개를 숙여 "고맙습니다"를 연발했다. 그 옛날, 나에게는 우산을 사준 사람이 없었지만 누군가 내게 우산을 줬다면 나 역시 구세주를 만난 것 같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아이와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봄비의 촉촉함을 만끽했다. 슬픔이 아니라 따스함으로 거듭난 기분이었다. 이렇게 봄비가 내리는 날이면 아련했던 나의 학창시절의 모습과 그날 그 여자아이의 모습이 떠올라 잠깐의 상념에 잠기곤 한다. 언젠가 그 아이가 성인이 되면 또 다른 아이를 그렇게 만나게 되겠지, 그 아이에게도 봄비가 따스함으로 추억되겠지….

이지순(대구 북구 노원동)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