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눈을 뜨면 '지난밤에도 둘이 한바탕 했구나'를 알려주는 증거인 아이보리색 털과 크림색 털이 자는 고양이들과 함께 집안을 뒹군다. 두 마리 모두 북슬북슬하기에, 그리고 두 녀석은 매일 우리들이 잠든 시간에 그들만의 장난을 치며 시간을 보내기에 매일 생산되는 털실의 양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사람의 기준에선, 그리고 나의 기준에선 서로 놀이를 하기 위해서 서로의 목덜미를 물거나 때리거나 발로 차거나 하지 않는다. 하지만 동물인 고양이들에게는 이러한 행위들이 서로의 형제와 함께하는 즐거운 놀이이고 운동이다.
앨리샤와 체셔가 만나기 전까진 내 잣대에 맞추어 고양이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핑계라면 핑계지만 체셔는 종종 우리가 반려동물과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게 하였다. 가끔 새벽에 심심하다고 깨우는 것을 제외하고는 늘 우리의 패턴에 맞추어 함께 생활했고, 나한테 가끔 장난을 걸 때를 제외하고는 부모님에게는 실수로라도 발톱 한 번 세운 적이 없을 정도로 순했다.
그런데 어느 날, 체셔와 앨리샤의 육탄전을 목격했다. 마치 TV에 나오던 야생 동물 다큐멘터리에서나 보던 장면이었다. 처음 서로를 만나서 낯설 때도 공격을 한다기보다는 경계하고 하악질만 했기 때문에 양 앞발을 번쩍 들고 서로를 공격하는 모습은 나를 아연실색게 하기 충분했다. 둘이 싸우면 체구나 힘을 봤을 때 앨리샤가 질 것이 뻔해 보였고 아팠던 적이 있었던 녀석인 만큼 행여나 다치지 않을까 우려가 컸기에 야단치며 둘을 떼어놓았다.
하지만 여러 번 그 광경을 목격하며 관찰한 결과 이들의 행동이 내가 생각하는 '싸움'이 아닌 '유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녀석들의 놀이의 시작은 매번 비슷했다. 내가 우려한 것처럼 덩치가 더 큰 체셔가 앨리샤를 괴롭히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고양이끼리 노는 것에 익숙하지 못한 체셔에게 늘 앨리샤가 먼저 다가와서 장난을 걸고 이내 솜방망이 같은 서로의 복슬복슬한 네 발로 씨름을 하듯이 엎치락뒤치락하며 투닥거리다가 한 마리가 벌떡 일어나 뛰어가면 남은 한 마리가 이를 쫓아가듯 뒤따라가며 한바탕 경주를 한다.
내 눈엔 꽤 격렬한 전투로 보이는 상황이기에 놀이가 아닌 행여나 말로만 듣던 서열 다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체셔와 앨리샤가 서로 서열 다툼을 하기엔 체구나 성격, 나이 모두 너무 많이 차이가 났다. 또한 놀이의 표현방법이 내 기준에서 좀 과격한 것일 뿐이지 서로를 위협하려는 의사는 전혀 없어 보였다. 내 생각을 뒷받침하듯이 지금껏 단 한 번도 싸움의 결과로 둘 중에 누군가가 다쳐서 피가 난다거나 사이가 나빠져서 앙숙이 되었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침팬지를 연구하고 동물을 보호하는 일에 평생을 쏟은 제인 구달 박사에 따르면, 동물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될수록 더욱더 사랑이 커지며, 사랑이 커질수록 더욱더 아끼게 된다고 한다. 그녀의 말처럼, 처음에는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그저 귀엽고 온순한 모습 대신 서로를 공격하는- 그들의 모습에 놀랐지만 고양이와 인간과는 사고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한 이후부터는, 그들의 장난치는 모습뿐만 아니라 화장실을 다녀온 후 엉덩이 부분을 그루밍하는 모습이라든가 화장실 모래를 털에 묻히고 다니는 행위처럼 사람의 관점에서 느끼기에 조금은 불편했고 싫었던 부분들까지 오히려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두 마리의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며 내가 깨달은 동물과 사람이 공존함에 있어서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그 동물의 타고난 성격이나 행동습관에 대한 이해와 그에 맞는 배려가 아닌가 한다.
장희정(동물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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