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日 건국 뿌리는 가야…고대 규슈는 분국과 다름없어"

일본열도를 개척한 한국의 선인/ 유상종 지음/ 학문출판 펴냄

제주 출신으로 육사를 12기로 졸업하고 2군사령부 기획관리처장과 70사단장 등을 지낸 예비역 준장인 유상종의 필생의 역작이다. 저자는 1984년부터 2011년까지는 대구과학대에서 국민윤리와 군사학을 가르친 이력도 갖고 있다. 역사 전공자가 아님에도 일본의 역사적 기원이 우리 조상이라는 것을 철저한 고증과 답사를 통해 하나하나 입증하고 있다. 이에 더해 기존의 학문적 성과물도 소개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틈나는 대로 일본 열도 어디라도 찾아갔다. 조상의 발자취가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규슈는 물론 교토와 오사카, 도쿄, 시마네 등 일본 전역을 누빈 기록물이기도 하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은 2003년 4월부터 2008년 8월까지 국군 예비역 장성들의 모임인 성우회가 발행하는 월간잡지에 '일본에 빛난 도래문화'라는 제목으로 39회 연재한 것이다.

이 책의 목차만 봐도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알 수 있다. 일본 진출(渡來) 문화로 시작해 고대 일본의 개국신(開國神), 삼국의 문화를 찾아서, 일본 국보 태반이 한국 불교 문화재에 이른다.

우리 조상들은 기원전 3세기부터 미개국이던 일본에 벼농사를 보급하면서 야요이 문화를 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특히 3국시대에서 빠져 있는 가야(伽倻)가 일본 건국의 뿌리라고 했다. 일본 고대의 규슈는 가야의 분국이나 다름없었다는 것. 또 우리의 역사에서 가야사가 누락되고 외면됨으로써 우리 역사의 한쪽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가야를 포함한 백제, 신라, 고구려 등 한반도의 문화 민족이 일본 열도로 건너가서 꽃피운 개척의 발자취가 곧 일본의 고대사의 뿌리를 이루고 그 흔적이 지금 일본 곳곳에 남아 있다는 것이다.

'천손(天孫)의 강림'이라는 모티브가 가야의 김수로왕의 신화와 닮아 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김수로왕 이야기에서 강림의 장소가 되는 구지봉(龜旨峰)이 일본의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나타나는 '구시후루다케'와 같다는 것이다. 가야에서 황족이 이주해 오면서 신화까지 가지고 간 것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또 가야의 뒤를 이어 신라와 백제가 일본 고대 문화의 두 가지 줄기를 이룬다고 설명한다. 그중 하나가 한반도 동남부에서 시마네현 이즈모(出雲)에 이르는 길로 들어와 야마토 문화를 이룩한 신라계로, 제10대인 스진(崇神) 천황은 신라계라고 했다. 다른 하나는 북규슈에서 일본의 내해인 세토나이카이를 통해 오사카 지역으로 진출하게 되는 백제계라고 했다. 15대와 16대의 오진(應神)'닌토쿠(仁德) 천황이 백제계로 이들 부자에 의해서 '가와치' 왕조가 번성하게 됐다는 설명을 뒤이어 한다. 가와치 왕조가 외래 민족 세력으로 백제국 왕가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일본 학자의 글도 소개하고 있다. 특히 백제계 최초의 천황인 오진 천황 때 이르러 백제의 근초고왕이 내린 칠지도(七支刀)가 하사된 것이라고 덧붙여 설명하고 있다. 백제계 인물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박사 왕인이다. 오사카에서 교토로 가는 중간 지점인 히라카카에 왕인 박사의 묘가 있으며 도쿄 한복판인 우에노 공원에도 10척이 넘는 왕인 박사의 공덕비가 세워져 있다. 오진 천황을 천거한 인물도 왕인 박사이며 일본 고대문화의 전성기인 아스카(飛鳥) 문화도 백제인이 일으킨 불교 문화라고 설명하고 있다.

고구려가 일본에 남긴 흔적은 고려(高麗'일본명 고마)로 남아 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인데 일본 내에서 가라(伽羅)라는 이름은 가야에서 왔으며 백제는 구다라, 신라는 시리기(白木)로 표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이타마 현에 있는 고려신사는 고구려 마지막 왕인 보장왕의 아들이 일본에 원군을 요청하러 왔다가 정착한 곳이라고 했다. 지금도 이 신사 안내판에는 '고구려국 왕족인 고마왕 작코(若光)를 모시는 곳'이라고 돼 있다.

대한불교청년회장, 동화사 신도회 초대 회장을 지낸 저자는 대한민국지키기 불교도 총연합 대구경북 회장을 맡고 있다.

151쪽, 2만5천원.

이동관기자 dkdk@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