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통증연가

인류에게 종족 번식의 본능이 존재하는 한 남녀 간의 사랑과 그로 인한 애달픔은 지속될 것이다. 비록 성공과 실패를 떠나 문헌이나 구전으로 전해오는 사랑의 애틋함을 반추해 봄으로써 이해관계에 따라 사랑하고, 헤어지는 염량세태의 청춘들에 교훈을 주고자 한다.

흔히들 '사랑은 국경을 초월한다'라고 한다. 온갖 역경을 겪고 이루어내는 사랑이야말로 값진 사랑으로, 우리는 '세기의 사랑'이라 한다. 구전으로 떠돌거나 기록에 의하여 전해오는 선조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더듬어보자.

고구려의 화희와 치희는 유리왕을 가운데 두고 서로에게 으르렁거렸다. 유리왕은 치희를 위하여 '이궁'이라는 별궁까지 지어주면서까지 그녀의 마음을 얻으려고 했지만 화희와 끝내 화해하지 못하고 친정인 한나라로 돌아갔다. 유리왕은 졸본 앞을 흐르는 혼강의 가문비나무 아래에서 떠나간 치희를 그리워하며 황조가를 지었다. 백제의 무왕은 신라의 선화공주가 소문난 미인이라는 것을 알고 서라벌에 숨어들어 서동요를 지어 초동들에게 부르게 하였다. 동요는 서라벌은 물론 신라 땅 전역에 퍼져 나가 선화공주는 창피함으로 인하여 신라 땅 어디에도 머무르지 못하고 결국 서동을 따라 백제국으로 갔다. 그녀는 지리산 여드랑 고개 위에 올라가 달을 보며 '저 달이 부모님이 계시는 서라벌 황성에도 뜨겠구나'라고 탄식하며 부모님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장군 김유신은 동생 문희가 혼전 임신을 하였다고 장작불에 그녀를 태워 죽이려고 했다. 고승도 아닌 여인을 장작불에 태워 등신불을 만들려고 한 것이다. 문희에게 잘못이 있다면 춘추공을 사랑한 죄와 언니의 꿈을 산 죄뿐이다. 그녀는 언니의 꿈을 산 덕분에 왕비가 되었고 아기도 많이 낳았다. 그녀에게는 사랑이 그냥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질곡의 아픔으로 얻어지는 것이었다. 중종반정으로 즉위한 중종의 첫째 부인인 단경왕후는 아버지 신수근이 반정에 가담하지 않고 연산군의 편을 들었다고 하여 집안이 역적으로 몰리고, 그녀도 폐위되는 수모를 당하며 중종과 생이별을 하였다. 중종은 국사의 무거움과 대신들의 숱한 간언에 지쳐 가끔은 경회루에 올라가 인왕산을 바라보며 단경왕후와의 사가(私家)의 삶을 그리워하며 옛 추억에 잠기곤 했다. 소문을 들은 단경왕후는 아침마다 인왕산에 올라가 자신의 무명치마를 바위 위에 걸며 변치 않는 사랑을 확인하곤 했다. 지금도 그 무명바위가 인왕산에 있다.

이 봄날 담쟁이 속살을 흔드는 새벽 바람 소리에 잠 못 들고 괴로워하는 청춘들이여, 사랑의 통증이 크면 성취도 그만큼 크리라. 사랑하라! 온몸이 부서지도록 사랑하여라.

최규목<시인 gm3419@daegu.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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