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중국 연변 조선족 最古 상여 국내 온다

1930년대 경남지역 이주민들 사용, 경산 전통민속체험공원 자료관 전시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현 장흥향 새마을에서 조선족들이 사용하던 상여가 국내로 들어와 경산상엿집 부근에 조성될 전시관에 전시될 예정이다. 사진은 장흥향 새마을에서 2002년 한 조선족 할머니 장례식에서 사용한 꽃상여 모습. 사진 강위원 교수 제공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현 장흥향 새마을에서 조선족들이 사용하던 상여가 국내로 들어와 경산상엿집 부근에 조성될 전시관에 전시될 예정이다. 사진은 장흥향 새마을에서 2002년 한 조선족 할머니 장례식에서 사용한 꽃상여 모습. 사진 강위원 교수 제공
강위원 경일대 명예교수.
강위원 경일대 명예교수.

일제강점기에 집단이주한 중국 연변의 조선족 마을에서 오랫동안 사용하던 상여가 경산으로 온다. 주로 화장장을 하는 중국에서는 흔치 않은 풍습인데다 전통문화를 지키며 살아온 조선족 마을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상여라는 점이 특징이다.

(사)국학연구소 대구경북지부는 중국 연변 조선족자치구 안도현 장흥향 새마을동네에서 사용하던 상여를 한국으로 들여오고 있는 중이다. 이 상여는 경산시 하양읍 무학산 중턱의 경산상엿집(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 제266호) 부근에 조성되는 한국전통민속체험공원 자료관에 전시될 예정이다.

새마을동네는 1930년대 경남에서 만주로 이주한 이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다. 1938년 3월 경남 합천'거창'밀양 지역에 살던 주민 100가구는 대구역을 거쳐 만주 지역인 안도현으로 이주했다. 당시 이들은 일제가 만주로 가면 무상으로 집과 함께 논 1만6천500㎡ 에서 농사를 짓게 해주고 자녀를 대학 교육까지 시켜준다는 감언이설에 속아 이주했다.

주민들은 이국만리에서 황무지를 개간하며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전통문화를 지키며 살았다. 특히 1941년에는 관'혼'상'제례를 위한 상여와 가마, 사모관대 등과 농악놀이에 필요한 북, 장구, 징, 꽹과리 등을 만들어 명절마다 농악을 즐겼다.

하지만, 문화대혁명이 시작된 1966년 이후 구습타파를 이유로 상여가 불태워졌고, 문화대혁명이 숙진 1970년대 초반 마을 어르신들의 고증과 작업을 거쳐 새롭게 제작해 사용해왔다. 중국은 도시의 경우 화장장이 원칙이지만 농촌에서는 토장이 가능하다. 하지만, 조선족들도 자녀들이 대부분 도시로 떠나면서 상여를 거의 사용하지 않게 됐다는 것.

국학연구소는 강위원 경일대 사진영상학과 명예교수로부터 조선족의 상여가 남아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강 교수를 통해 주민들을 설득해 기증을 받았다. 강 교수는 1990년대부터 중국 조선족들의 삶의 현장을 사진으로 남겨왔다. 그는 "중국 내에서도 민속마을이 인기를 끌면서 새마을의 상여를 원하는 곳이 많았다"며 "모국에서 상여 관련 전시관 등을 지어 영원히 잘 보관하겠다고 주민들을 어렵게 설득했다"고 말했다. 또 "조선족들의 상여는 단순한 상여가 아니라 타지에서 혹독한 삶을 살면서도 우리 것을 지키며 보존하려는 사연과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덧붙였다.

마을 주민들은 자신의 정신과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상여를 떠나 보내기 전에 제를 올리며 아쉬움을 달래기도 했다. 상여는 이달 10일 중국에서 선적을 마친 상태로 통관절차를 거쳐 하양 무학산으로 오게 된다.

하지만, 상여가 전시될 한국전통민속체험공원 조성 사업이 답보 상태에 머물고 있는 점은 걸림돌이다. 공원 조성 사업은 일부 주민의 반대와 경산시의 미온적인 태도로 지지부진한 상태다. 조원경 국학연구소 이사장은 "전통 장례와 관련한 전시관을 짓는다면 우리 고유의 삶과 죽음에 대해 성찰하고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경산'김진만기자 fact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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