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대구의 중견 기계부품제조기업인 삼익THK에 입사한 신동준(33) 씨. 성실함을 눈여겨본 회사 측의 권유로 올해 초 생산팀에서 품질보증팀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요즘 하루하루가 즐겁다. 작업복 차림으로 능숙하게 공구를 다루며 볼 나사를 척척 조립해내는 신 씨는 사실 지역의 4년제 대학 사범대를 나온 대졸자다. "졸업 후 교원임용시험에 4번 응시했는데 번번이 실패했어요. 남들 다 취업하는데 서른 살이 되도록 혼자 공부하고 있으니 미래가 불안하고 스트레스도 무척 컸죠."
신 씨는 절박한 심정으로 '인생 유턴'에 도전했다. 2010년 한국폴리텍대학 대구캠퍼스 컴퓨터응용기계학과(2년제)에 입학한 것. 당장 '4년제 대학 나와서 왜 기술을 배우려고 하느냐'는 주변의 반대가 이어졌다. 새 학교 적응도 쉽지 않았다. CNC선반, 밀링 같은 기계 용어부터 생소했고, 펜을 잡던 손에 쥔 공구는 어색했다. 그러나 늦은 만큼 열심히 노력했다. 10살 어린 같은 과의 공고 출신 동급생들에게 묻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컴퓨터응용기계 자격증과 정보처리산업기사 자격증을 땄고, 목표로 한 삼익THK 입사에도 성공했다. 보너스, 성과금을 합한 그의 연봉은 3천만원 초반. 신 씨는 "교사의 꿈은 접었지만 기술을 배워 평생직장을 얻는다는 것도 매력적이지 않느냐"며 자신 있게 말했다.
4년제 대졸자나 석'박사 학위 소지자들이 취업에 유리한 전문대에 재입학하는 '학력 유턴'이 보편화하고, 인문계고 학생들이 직업'기능학교로 '진로 유턴'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고학력 청년 실업이 심화하면서 일자리를 찾아 학력과 진로를 과감히 바꾸는 추세가 학벌사회의 견고한 틀을 허물고 있는 것. 관계기사 4면
취업'창업에 유리한 학과들에 국한되긴 하지만 요즘 전문대에서는 대졸자, 석'박사 신입생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구보건대의 경우 올해 서류와 면접만으로 뽑는 대졸자 전형에서 200여 명 모집에 488명이 지원했다. 이중 석'박사, 4년제 대졸 응시자가 178명이었다. 간호과, 물리치료과 등 인기학과는 경쟁률이 10대 1에 육박했다.
학력 유턴은 기존 간호보건계열에서 취업이 잘되는 기계, 전기, 화공 등 이공계열로도 확대되는 추세다. 4년제 대학을 중도에 그만두고 입학하는 사례도 흔하다.
한국폴리텍 대구캠퍼스 경우 지난해와 올해 1년제 기능사 과정(컴퓨터응용기계, 멀티미디어콘텐츠제작) 모집정원 60명 중 절반이 대졸 또는 전문대졸자다. 무료로 운영되는 이 과정은 수당까지 지급한다.
진로 유턴도 활성화되고 있다. 대구시교육청이 마련한 '일반고 직업과정'에 참여하는 일반계고 3학년들이 늘고 있다. 2011년 583명에서 올해 632명으로 늘었다. 기존 경북기계공고 부설 '대구산업학교' 희망자가 늘면서 올해는 처음으로 대구과학대(조리, 제과'제빵 80명)와 수성대(피부미용 30명)에 학생들을 위탁해 무료 교육 기회를 주고 있다.
최영상 대구보건대 입학처장은 "학력 유턴으로 입학한 학생들은 목표가 분명해 학교생활도 열심히 하는 경향이 많다"며 "또 이미 전문대 일부 학과는 인문계고 출신 학생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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