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안상학의 시와 함께] 인간성에 대한 반성문·2-권정생(1937~2007)

도모꼬는 아홉 살

나는 여덟 살

이학년인 도모꼬가

일학년인 나한테

숙제를 해달라고 자주 찾아왔다.

어느 날, 윗집 할머니가 웃으시면서

도모꼬는 나중에 정생이한테

시집가면 되겠네

했다.

앞집 옆집 이웃 아주머니들이 모두 쳐다보는 데서

도모꼬가 말했다.

정생이는 얼굴이 못생겨 싫어요!

오십 년이 지난 지금도

도모꼬 생각만 나면

이가 갈린다

-산문집 『빌뱅이 언덕』(창비, 2012)

상처의 반대쪽을 지향하면 꿈이 된다. 권정생은 어린 시절 겪은 두 번의 전쟁으로 교육의 기회와 건강을 잃게 된다. 그에게 상처의 반대쪽은 아이들이 마음껏 자랄 수 있는 평화로운 세상이었다. 작가가 되고 싶었던 꿈은 이루며 살았지만 통일과 전쟁이 없는 세상은 영영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꿈이 담긴 작품은 여전히 독자들의 가슴, 가슴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꿈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는 결혼생활을 할 수 없는 몸이었다. 환갑 무렵에 쓴 이 동시 같은 시는 그런 아픔이 엿보이지만 읽는 이로 하여금 웃음을 머금게 한다. 유언장에서 그는 다음 세상에서는 연애를 꼭 한 번 해보겠다는 생각을 밝혔다. 그것도 벌벌 떨지 않고 아주 잘. 이런 소년 같은 마음은 병든 몸을 오래 지탱한 버팀목의 하나였을 것이다. 내일은 그의 여섯 번째 기일이다.

시인 artand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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