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봉사, 가족이 '찐'해졌다

대구역 무료급식 일곱가족 등 "같이 하는 일 情이 쌓여가"

수년째 휴일 급식봉사활동을 펴고 있는 부모와 자녀들이 19일 오전 도시철도 대구역노숙자 무료급식소에서 급식봉사활동을 마친 뒤 가족 화합을 다지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수년째 휴일 급식봉사활동을 펴고 있는 부모와 자녀들이 19일 오전 도시철도 대구역노숙자 무료급식소에서 급식봉사활동을 마친 뒤 가족 화합을 다지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19일 오전 6시 대구 북구 칠성동 도시철도 1호선 대구역 2번 출구 앞. '하담봉사회' 소속 자원봉사자 20여 명이 노숙자들을 위한 무료 급식 봉사에 나섰다. 이들 중 절반은 10대이거나 20대 초반의 학생들이고 나머지는 50대 초반의 장년층이었다. 학생들은 노숙자들에게 밥과 반찬을 나눠주고, 어른들은 식판을 설거지했다. 급식이 다 끝난 뒤 설거지를 하던 정동화(51'경산 남천면) 씨는 사람들에게 요구르트를 나눠주던 정영숙(20'여) 씨를 불렀다. "딸, 힘들었지? 우리도 아침 먹자."

하담봉사회에는 일곱 가족이 대구역 무료 급식 봉사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봉사활동을 하면서 부모 자식 간 정이 더 진해졌고, 봉사활동을 통해 세상을 더 따뜻한 시선으로 보는 법을 배우게 됐다고 했다.

올해 고등학교 1학년인 쌍둥이 형제 이승현'승찬(17'대구 남구 봉덕동) 군은 일요일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는 게 힘들지만 봉사활동에 빠지지 않는다. 목사인 아버지 이성도(54) 씨를 따라 지난해부터 나오기 시작하면서 하루라도 빠지면 뭔가 허전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승현 군은 "어르신들이 우리가 드리는 밥을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고 뭔가 좋은 일을 한 느낌에 뿌듯하다"고 말했다. 매주 급식 봉사를 나오면서 자신보다 힘든 사람을 보는 눈도 달라졌다. 승찬 군은 "예전에는 몸이 불편한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을 보면 그저 무심하게 지나쳤는데 지금은 나보다 힘든 사람들을 보면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된다"고 했다.

자녀의 손에 이끌려 나오면서 새로운 삶에 눈뜬 아버지도 있다. 전재영(50'대구 수성구 욱수동) 씨는 4년 전 딸 다원(17) 양이 갑자기 "대구역에서 열리는 무료 급식 봉사에 참가하고 싶다"고 말하면서 급식 봉사에 참가하게 됐다. 전 씨는 "다원이가 중학교 1학년 때 급식 봉사를 하겠다는 말에 집에서 대구역까지 매주 데려다 줬다"며 "봉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기 지루해서 결국 나도 봉사활동에 참가했다"고 했다. 다원 양은 쌍둥이 동생인 지원'채원(15'여) 양까지 봉사활동에 참여시켰다. 전 씨는 일요일 아침마다 딸들과 같이 대구역으로 오가는 동안 딸들의 고민도 들어주고 학교생활 이야기도 한다. 그러면서 부녀 사이가 더 끈끈해졌다. 전 씨는 "무엇보다 아이들과 뭔가 같이 할 수 있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 부모 자식 간의 정을 더 쌓게 한다"고 했다.

무료 급식 자원봉사에 참여한 자녀들은 급식 봉사를 하면서 학업과 진로 결정에도 도움을 많이 받았다. 정영숙 씨는 올해 동국대 경주캠퍼스 한의예과에 대학 전체 수석으로 입학했다. 영숙 씨는 입시 준비를 해야 하는 고등학교 3학년 때도 한 달에 한 번은 대구역에 나와서 봉사활동을 했다. 영숙 씨는 "늘 일어나던 시간에 일어나 준비하는 것이어서 일요일이라고 특별히 힘들지는 않았다"며 "오히려 학교 공부 이외에 남을 생각하는 마음,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배려심 등을 급식 봉사를 통해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쌍둥이 형제 이승현'승찬 군도 급식 봉사를 통해 아버지와 이야기를 하면서 아버지의 모습을 따라가기로 결심했다. 이성도 씨는 "한 명은 사회복지학과로 진학하겠다고 했고, 한 명은 목회자의 길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며 "아마 나와 함께 봉사활동을 다니면서 깨달은 바가 있어서 그랬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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