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버스로 그리는 경북 스케치] <22>볼거리, 놀거리, 살거리 많은 영덕의 봄

복사꽃 '천지삐까리'…강구항엔 '끝물' 대게…영덕의 4월은 싱싱하

영덕군 강구면 강구항에는 11월부터 이듬해 4, 5월까지 대게잡이 어선들이 몰려든다.
영덕군 강구면 강구항에는 11월부터 이듬해 4, 5월까지 대게잡이 어선들이 몰려든다.

영덕의 5월은 아쉽다. 영덕대게는 금어기에 들어가 구경조차 할 수 없고, 복사꽃이 사그라진 자리에 복숭아가 서서히 몸집을 불려가는 시기다. 다행히 영덕을 둘러봤던 시기는 한 달 전이었다. 영덕의 4월은 복사꽃이 '천지삐까리'였다. 복숭아 주산지답게 도로변을 따라 분홍빛 복사꽃이 물결을 쳤다. 금어기를 앞둔 강구항 대게위판장도 살이 꽉꽉 오른 대게 경매로 부산했다.

◆복사꽃밭을 따라가다

지품면은 영덕 내에서도 복숭아 재배면적이 가장 넓다. 388농가에서 270㏊ 규모의 복숭아 농사를 짓는다. 연간 생산량은 4천178t, 생산 규모도 83억3천여만원이나 된다.

지품면 일대에 복숭아 농사가 시작된 건 태풍 때문이었다. 1959년 9월 사라호 태풍으로 오십천이 범람하면서 농경지가 모래밭으로 변해버렸고, 대체작물로 심게 된 게 복숭아나무였다. 1970년대 후반에 울진군 후포읍에 복숭아 통조림 공장이 생기면서 본격적으로 복숭아를 키우기 시작했다. 1990년대 들어 통조림 공장 납품이 줄면서 주민들은 도회지로 나가 직거래를 했다. 당시 통조림용 복숭아는 20㎏ 한 상자에 8천원을 받았지만 내다 팔면 2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

요즘은 마을 앞을 지나는 국도 34호선을 따라 판매대를 두고 자가 판매를 한다. 도로변에서 파는 노점만 40곳이 된다. 지품면에서 나는 생식용 복숭아는 택배판매가 20~30%, 공판장 10%, 자가판매가 60% 이상이다. "요즘은 농민들도 고객 관리를 해요. 20~30상자를 사면 한두 상자는 덤으로 주기도 하고, 생일축하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하죠. 고객 리스트를 작성해 두고 명절에 선물을 돌리는 경우도 있어요."

지품면 복숭아는 한'칠레 FTA의 직격탄을 맞았다. 복숭아 농가의 70%가 보상금으로 3.3㎡에 1만1천800원을 받고 폐원을 했다. 요즘은 다시 FTA 이전의 80% 수준으로 회복했다. 하지만 걱정은 여전하다. 2015년 완공예정인 동서4축 고속도로 때문이다. 영덕을 찾는 내륙 지역 관광객들이 마을 앞 국도34호선 대신 고속도로를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 도로변에서 복숭아를 파는 농가들은 당장 판로가 막히게 된다.

지품면 이야기를 들려준 백광훈(63) 전 오천2리 이장은 경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옹기장'이다. 그가 형을 따라 옹기장이의 길로 들어선 건 열네 살 때였다. 옹기를 굽는 일은 중노동이었다. 추석을 쇠고 나면 김장 대목이라 하루에 스무 시간씩 작업을 해야 했다. 밤을 꼬박 새우는 일도 많았다.

빚어낸 옹기는 보름 동안 가마에 넣어 불에 굽는다. 굴 입구부터 불을 때서 작은 굴 12통을 모두 지펴야 하는데 밤낮으로 지켜야 한다. "잠도 못 자고 불을 지키다 보면 죽을 것처럼 힘이 들어요. 매번 마지막 불을 땔 때쯤이면 '이 짓을 왜 하나' 싶은데 벌써 30년이네요." 백 옹기장은 연간 3천 개 정도의 옹기를 생산한다. 봄부터 가을까지 빚어 말린 옹기를 11월에 가마에 넣어 한번에 굽는다. 영덕 옹기의 명맥은 아들 백민규(33) 씨가 잇고 있다. 그는 "아들의 옹기 실력을 점수로 매기면 아직 70점"이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대게가 꿈틀거리는 강구항

오전 8시 영덕 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강구행 버스에 올라탔다. 강구 대게위판장에는 일찍부터 어민과 중매인, 상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어민들이 잡아온 대게를 부지런히 위판장 바닥에 풀어놓자 수협 직원들이 크기와 무게, 살이 찬 정도에 따라 박달대게와 수게(물게)로 구분한 뒤 한 줄에 30~40마리씩 일렬로 늘어놓았다. 속이 꽉 찬 박달대게는 붉은 표시가 채워졌다.

오전 9시, 확성기의 사이렌 소리와 함께 경매가 시작됐다. "첫 번째 요 줄, 자~." 권영문(51) 수협 판매사가 낮고 긴 목소리로 읊조리며 중매인들과 눈을 맞췄다. 중매인들이 손가락을 다리 쪽에 감추고 입찰가격을 수신호로 보냈다. "91번, 8만6천500원. 다음 요 줄 자~." 낙찰받은 중매인과 가격을 부른 판매사가 쉴새 없이 경매를 이어간다. 뒤에 선 상인들은 수신호로 자신의 중매인에게 희망 가격을 알려준다. 지직거리는 확성기 소리를 다들 잘도 알아듣는다.

박달대게는 크기에 따라 10여 가지로 분류하고, 수게는 대'중'소로만 분류한다. 박달대게가 10만원대라면 비슷한 크기라도 수게는 1만~2만원이다. 이날 들어온 대게는 박달대게가 800여 수, 수게는 2천여 수 정도. 살이 꽉 찬 게는 배 부분이 누런 빛깔을 띤다. 같은 입찰가를 제시한 중매인들은 가위바위보로 낙찰자를 결정했다. 이날 경매된 대게 중 가장 저렴한 건 9천800원짜리 수게. 가장 비싼 대게는 박달대게 15만6천원이었다. "대게잡이는 11월부터 시작되는데 그 시기는 대게의 살이 좀 덜 차거든요. 그나마 괜찮은 대게를 박달대게로 경매에 부치는데 상인들이 게가 무르다고 불평을 해요. 어민들은 박달대게가 맞다고 반발하고. 참 난감하죠. 그래서 11, 12월에는 10%를 접어줍니다. 10마리를 경매하면 1, 2마리를 더 끼워주는 식이에요."

현재 강구항에는 대게잡이배가 3척이다. 대게 자망어선은 오징어잡이배로 전환한 경우가 많다. 대게 생산량이 해마다 줄고 있기 때문이다. 상인들과 중매인들 뒤에서 김동식(65) 선장이 분주하게 오갔다. "오늘은 박달대게만 600마리를 냈어요. 가격도 잘 받은 편이죠." 그는 29t 제3청용호와 오대호 2척을 갖고 있다. 수심 300~400m인 독도 동쪽 50마일 지점까지 가서 대게를 잡는다. 조업을 나가면 4박 5일이 걸리고 1천500m 길이의 그물 20틀을 펼쳐도 적자를 보는 경우도 많다. "한번 출항할 때 1천200만원이 들어요. 그물 보수 비용까지 더하면 2천만원이 드는데 어획량은 자꾸 줄어드니 걱정이 많죠."

◆건강한 삶과 환경, 구수리 사람들

강구항 위판장에서 오십천을 따라 1㎞가량 걸어가면 경북조종면허시험장이 있다. 모터보트나 수상오토바이, 고무보트 등 물 위에서 움직이는 동력장치를 움직이려면 자동차처럼 면허가 필요하다. 2000년 문을 연 이곳은 대구경북에서는 유일하게 요트 면허시험도 가능하다. 모터보트 조종은 자동차보다 쉽지만 시험은 까다롭다. 조종뿐만 아니라 시험관의 지시에 따라 "전후좌우 확인!" "익수자 확인!" 등 필요한 조치를 복창해야 하고, 안전 교육도 받아야 한다.

시험 코스대로 모터보트를 타고 돌아봤다. 서서히 출발한 보트가 물 위에 띄운 부위를 이리저리 돌았다. 배를 멈췄다가 후진을 하고, 방향을 돌려 달리다가 되돌아와 익수자를 구출하고 돌아왔다. 시원스레 물 위를 가르는 보트가 상쾌하다.

오십천에 자리 잡은 조종면허시험장은 파도가 약하고 수위의 영향이 적다는 점이 장점이다. 이곳에는 연간 1천여 명 이상이 면허실기시험을 치른다. 이곳 관계자는 "응시자들은 전국에서 모여드는데 연습 기간까지 포함해 2, 3일 정도를 영덕에서 머물기 때문에 지역 상권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오후 2시 40분 강구에서 장사해수욕장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남정면 장사해수욕장은 900m나 펼쳐진 백사장이 일품이다. 우거진 소나무숲 사이로 고운 모래사장과 짙푸른 바다에 눈이 시원하다.

장사해수욕장 인근에는 도천마을과 천연기념물인 도천숲이 있다. 숲 속은 자연체험학습을 나온 유치원생들이 뛰어다녔다. 숲 속에 핀 꽃을 꺾어 선생님에게 자랑하는 아이, 돌아가며 그네를 타는 아이. 까르륵 웃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도천숲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곳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보존된 '삼굿'이다. '삼굿'은 삼베의 원료인 대마의 껍질을 벗기기 위해 땅속 구덩이를 파고 삶던 장소다. 하천과 가까운 곳에 적당하게 구덩이를 파고 나무를 쌓은 후 나무 위에 돌을 올리고 불을 지핀다. 돌이 달아오르면 삼을 적당히 쌓고 짚으로 덮은 뒤 물을 부어 수증기로 찐다. 숲 속에 묻혀 있던 이곳은 도천숲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발견돼 세상에 알려졌다.

도천리는 올해 '로하스 영덕 도천만들기'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다. 건강한 삶과 환경보전을 추구하는 로하스 운동의 일환. 음식물쓰레기를 퇴비로 재활용하고, 분리수거를 하며 쓰레기를 20%가량 줄였다. 2004년에는 '구수리'를 마을 브랜드를 만들었다. 볼거리 많고, 놀거리 많고, 살거리 많아 'good three'를 한글로 부르기 쉽게 고안한 이름이다.

이재원(69) 도천리 이장은 "50년 뒤 건강한 깨끗한 마을을 생각하며 로하스 운동을 시작했다"며 "로하스는 마을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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