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복호 디자이너와 김재우 디자이너의 패션은 확연히 달랐다. 다양한 색채를 사용해 화려함을 자랑하는 최 디자이너의 컬렉션과 달리 김 디자이너의 작품은 절제된 색으로 커리어우먼에게 제격이다. 패션업계 선'후배 사이인 두 사람은 패션에 대한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패션 디자이너의 길에 들어선 계기는.
▶최복호(이하 최)=철학을 전공했고 부모님은 성직자의 길을 가라고 조언하셨다. 하지만, 성직자의 삶은 너무 무거울 것이란 부담감에 포기했다. 교회에서 행사 때마다 조형물과 장식물을 만들었는데 눈여겨보시던 목사님이 당시 생소했던 패션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소개했고 1968년 패션 디자이너라는 꿈을 갖게 됐다. 이후 서울 국제복장학원에서 패션과정을 공부하게 됐고 1975년에 브랜드를 론칭했다.
▶김재우(이하 김)=고등학교 때부터 미술대학에 가고 싶었다. 특히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싶었다. 진학 준비도 했지만,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혀 공대에 입학했다. 하지만, 나와 잘 맞지 않아 1999년 다시 계명대 패션디자인학과에 입학했다. 이때 처음 패션디자인을 만났다. 좋은 교수님을 만나 '패션'에 눈을 뜨게 된 것 같다. 당시 나를 가르쳤던 교수님은 다양한 전시회와 공모전에 참여하도록 독려하셨다. 그런 과정을 거치는 동안 많은 작업에 참여했고 이때에 느꼈던 희열이 나를 지금의 패션디자이너로 키웠다. 이 때문에 2006년 학교를 졸업한 뒤 뉴욕의 FIT(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라는 곳에 들어가 1년간 패션을 배웠다.
-패션 디자이너란 '○○○' 이다.
▶최=디자이너는 사람에게 'FUN & 樂'을 만들어 주는 스타일리스트라고 생각한다. 패션은 삶의 에너지다. 스타일링을 통해 설렘, 울림을 경험한다면 그것이 삶 속에 녹아 희열이 에너지가 된다는 이론이다. 이런 에너지를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이를 통해 즐거움을 만들어주는 것이 패션 디자이너다. 그래서 청도 각북면에 설립한 패션문화연구소의 이름도 'FUN&樂'으로 지었다. 이곳에서는 패션 외에도 다양한 문화공연 행사도 열고 있다.
▶김=한 마디로 '예쁜 옷을 만드는 사람'이다. 패션은 하나의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단순히 예쁜 것도 중요하지만, 누구나 입고 싶어하는 그런 높은 경지의 무언가를 만들어내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이 패션 디자이너라 생각한다.
-패션이란 '○○○'이다.
▶최=패션은 나를 바꾼다. 패션은 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강력한 힘이다. 패션의 스타일을 바꾸면 운명의 열매가 맺는다. 어느 복식학자는 패션 차림에서 그 사람의 이미지가 60% 차지한다고 했다. 패션은 당신의 모습이지만 그 모습이 당신을 변하게 한다.
▶김=패션은 '도박'이다. 패션 디자이너는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 예술의 경지가 있다. 하지만, 이만을 추구할 수는 없다. 이 때문에 상업적인, 대중화된 패션을 생각해야 한다. 그러한 가운데에서 적절히 조절을 해야 자신만의 철학과 대중성을 잘 접목할 수 있다. 결국, 이 적절한 조절의 성공과 실패에 따라 디자이너의 가치가 결정되는 '도박'이다.
-롤 모델이 누구였나.
▶최=앙드레 김 선생님. 문화를 사랑하며 문화를 개척하고 또 한국문화를 패션에 녹여낸 주인공이다. 그분의 역동적인 삶에서 많은 가르침을 얻었다. 한국 패션계의 대모인 최경자 디자이너에게 가르침을 받을 때 최 선생님은 항상 앙드레 김 선생님의 열정에 대해 전하면서 자극을 줬다. 말로만 듣던 분을 대구패션협회 회장을 하던 시절 실제로 뵀는데 그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김=나에게 딱히 한 명의 롤 모델을 뽑기는 어렵다. 패션을 잘하는 이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각자가 자신만의 철학에 따라 열심히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 중에 누구를 뽑기는 어렵다.
최복호 디자이너에게서는 열정을 배우고 싶다. 오랜 경력과 연세에 맞게 많은 노하우와 생각, 업적을 남기셨지만,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운 트렌드를 패션쇼에서 선보이는 모습이 너무도 인상 깊었다. 젊은 층을 소화할 수 있는 느낌을 잘 살려서 정말 인상 깊었다.
-패션 철학은 무엇인가. 주로 영감은 어디에서 얻는지.
▶최='패션은 육체에 입혀지는 것이 아니라 영혼에 입힌다'는 것이 나의 패션 철학이다. 나는 오늘도 나의 혼의 가치를 입히고 팔고 있는 가치 장사꾼이다. 옷은 누구나 잘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옷 속에 디자이너의 혼이 살아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주로 패션에 대한 영감을 자연 속에서 얻는다. 영감의 원천은 '청도의 정원'과 '아시아'이다. 나는 색을 파는 디자이너이다. 김홍기 씨가 '색'은 서로가 색을 통해 뭉치고 환호하며, 얽히고설키며 마음을 열고 동화를 이끌어내 상처를 봉합해주는 '봉합사'라 칭한다. 이런 자연의 색이 봉합사라고 생각한다.
▶김=나의 철학은 '패션은 옷장에 보관하기 위한 옷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거실에 두고 전시할 수 있는, 남들이 보고 감탄할 수 있는 예술성을 담은 작품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술품에서 영감을 주로 찾으려 한다. 또 건물과 사진, 산업제품에서도 영감을 받는다. 고등학교 때 산업디자인을 배웠던 점 때문인지 멋진 디자인을 가진 제품을 보고 이를 패션에 접목하는 시도를 자주 한다. 나는 좋은 것, 예쁜 것을 보고, 추구하는 사람의 눈은 똑같다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누구나 예쁘다고 생각되는 사물을 보고 영감을 받아 패션에 적용하려 한다.
-한국에서 패션 디자이너로 일하는 것은 어떠한가. 해외와 비교하면.
▶최=우리 디자이너들은 너무나 열악한 환경에 지쳐 있다. 시장이 없다. 다시 말해 장터가 부족하다. 경쟁력이 있는 후배들이 많은데 어떻게 하면 이들이 마음껏 세계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인지 다양한 전략이 필요하다. 국가가 장기적 발판을 만들어야 한다.
▶김=한국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디자이너 중 '패션' 디자이너의 대우가 가장 안 좋은 것 같다. 기성복 업체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마치 '노동'과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2000년대 후반부터 자체 브랜드를 가진 디자이너들이 활동을 시작하고 있고 그런 환경이 조성되고 있지만, 여전히 국내에서는 패션 디자이너로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한국의 소비자들은 주로 패션 브랜드의 이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누가' 디자인을 했는지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이 패션 디자이너를 어렵게 한다. 나는 그래서 국내 시장보다 수출을 하려 한다. 패션 디자이너로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가 해외에서 더 인정을 해주더라.
-대구경북에서의 패션환경은.
▶최=특별히 대구경북에서 패션을 한다고 해서 한계를 느끼지 않는다. 대구경북에서 세계를 상대로 디자인할 수 있다. 하지만, 현대의 세계 하이패션산업은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에 놓여 있는 상황이다. 그 응급실에서 살아나서 경쟁력을 갖거나, 브랜드가 사라지거나, 장기입원을 해야 하기도 한다. 패션 자영업에 위기가 다가왔다. 샤넬도 다시는 옷으로 승부를 보려고 하지 않는다. 대기업이 직접 패션 마켓을 점유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조금 더 긴장하고, 조금 더 위기의식을 느끼고 자생력을 키우는 브랜드만이 힘든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김=패션 원단에서부터 부자재 등 모든 것이 서울에 집중돼 있다. 이 때문에 젊은 패션 디자이너들은 동대문을 비롯한 서울에 가서 활동을 하려 한다. 디자인을 하는 동안 집중이 되지 않으면 현장에서 원단과 부자재 등을 보면서 영감을 얻는 경우도 꽤 있기 때문이다.
나도 한 달에 수차례 서울에 간다. 영감도 얻고 원하는 원단을 찾기 위해서다. 대구가 섬유의 도시라고 하지만 원단은 대개 '화섬'이다. 하지만, 패션 디자이너는 다양한 원단과 재료를 찾아야 한다.
또 대구는 보수적인 도시이지 않느냐. 개인의 이름을 건 편집숍을 운영하는 패션 디자이너의 트렌드, 브랜드 등을 대구 소비자가 쉽게 받아들이고 구입하기까지는 여전히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다. 이 또한 내가 해외 시장에 집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후배에게 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최=끝없는 자극으로 변화를 경험해야 한다. 가치를 입히고, 장터를 찾고, 우리 문화 코드인 흥과 한을 갖고 흥을 트렌드로 한을 미학으로 만들어서 세계인을 유혹하자는 논리를 펼치고 싶다. 색으로 풀고 간을 맞춘 비빔밥 패션을 선보인 나의 브랜드가 해외 바이어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후배들도 우리의 가치에서 디자인 영감을 얻었으면 한다. 선배의 노래를 후배 가수들이 새로운 창법으로 부르는 '불후의 명곡'이란 방송 프로그램을 보면서 디자이너들도 핵심적인 가치를 녹여내 디자인 상품을 개발하기를 당부하고 싶다.
또 질투를 에너지로 활용하길 바란다. 그러나 나쁜 질투는 자신의 발목을 잡는다. 백화점에 수많은 브랜드와 치열한 경쟁을 통해 얻은 지식은 질투를 지혜로 풀면 경쟁력이 자생한다. 15년 전 부산에 진출하면서 매출이 곤두박질을 했다. 10년 먼저 진출한 브랜드들과 경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고, 텃세도 만만치 않았다. 정상 탈환을 위해 3년 계획을 세우고 부산 시장 분석에 들어갔다. 3년 후에는 정말 정상을 탈환했다. 좋은 질투가 자극제가 된 셈이다.
김봄이기자 b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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