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키스 시위

2002년 11월, 서울 광화문 앞 광장에서 처음으로 촛불 시위가 열렸다.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여중생 신효순 양과 심미선 양을 추모하는 집회였다. 사고가 일어난 그해 6월에는 월드컵 열기에 묻혀 세간의 시선을 끌지 못하다가 뒤늦게 열렸다. 시위는 미군 법정이 사고 장갑차 운전병들에게 무죄 판결을 내리면서 반미 성격을 띠게 되었고 전국적으로 확산, 한때 한'미 간 외교적 갈등을 빚게 하기도 했다.

촛불 시위는 국내 시위 문화를 바꾸는 분기점이 됐다. 이전의 시위에는 주로 화염병이 등장, 폭력적 양상이 두드러지면서 시위의 취지를 가리기도 했으나 촛불 시위는 평화적 방식으로 더 큰 울림을 전달했다. 촛불은 자신의 몸을 불살라 주위를 밝게 비추는 희생을, 바람에 꺼지면서도 모여서 온 세상을 채우는 결집을, 어둠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고 새벽을 기다리는 꿈과 기원을 의미했다. 촛불 시위는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와 2008년 5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로 이어져 큰 반향을 일으켰다.

비폭력 시위는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가 벌인 비폭력 불복종 운동, 간디의 영향으로 1950, 60년대 미국 내 인종차별 반대 운동을 주도한 마틴 루서 킹 목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늘날 비폭력 시위의 양상은 더욱 다양하게 나타난다. 1989년 소련의 압제에 항의, 발트 3국 200만 명의 국민이 참가한 데서 비롯된 '인간띠 시위', 동물 애호가들의 '나체 시위', 여성 인권 향상을 부르짖는 우크라이나 여성 단체의 '가슴 노출 시위', 국내 환경론자들이 벌이는 '삼보일배 시위' '1인 시위' '침묵시위' 등이 그러하다.

25일 터키 수도 앙카라의 한 지하철역에서 시민들이 '키스 시위'를 벌였다. 지하철역 관리자가 키스를 자제해 달라는 안내 방송을 하자 이에 반발해 일어난 시위였다. 이슬람 국가이면서도 정교분리의 세속주의를 추구하는 터키이지만 현 정부는 '이슬람 율법 정치'를 강화하고 있다. '키스 시위' 자체는 깜찍한 면이 있으나 터키 내에서 '공개된 장소에서 입맞춤하는 자유'와 '부도덕'을 둘러싼 논쟁을 일으키고 있어 파장이 만만찮다. 우리나라에서도 지하철 안에서 남녀의 노골적인 애정 행위가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키스 시위'까지 일어나지는 않으니 한국과 터키가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을 위안으로 삼아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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