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필귀정] '天皇敎' 교주가 그 모양이니

일본 극우 세력의 교주(敎主)는 천황이다. '덴노 헤이카 반자이!'(천황 폐하 만세) 지난달 일본이 연합국 점령 체제에서 벗어난 지 61주년임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이 시대착오적인 구호가 세 번 울려 퍼진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천황의 신정(神政)은 반세기도 전에 원자폭탄의 불벼락 속으로 사라졌지만 이들의 정신세계는 여전히 천황이 지배하고 있다. 선거로 지도자를 뽑고, 민주적 헌법을 갖췄으며 21세기 과학 문명의 첨단을 달리고 있지만 극우 세력의 시계는 아마테라스 오미가미(天照大神)가 다스리는 신화시대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그들은 미개하다.

미개하므로 그들에겐 양심, 이성, 계몽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침략에 대한 확실한 정의(定義)는 없다"는 도덕적 무정부주의, "전쟁 상황에서 병사들의 휴식을 위해서는 위안부가 필요했다"는 도구적 맹목주의는 그래서 자연스러운, '천황교'의 최면에 빠져 뱉어내는 종교적 황홀경의 방언(方言)이다. 이것이 그들의 비극이다.

누가 그들을 이런 비극으로 이끌었나. 히로히토 천황이다. 그는 어떤 신(神)이었나. 책임 회피와 비겁의 신, 살기 위해 전쟁 책임을 신민(臣民)과 '충용(忠勇)한' 신하들에게 떠넘긴 신이었다. 항복 직후 히로히토와 그 측근들은 책임 회피를 위해 부지런히 머리를 굴렸다. 그 첫 시도가 '1억 총참회론'이다. 이는 침략 전쟁에 대해 천황을 포함해 모두가 반성하자는 것이 아니다. 피해국과 국민에게 참회한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패전으로 천황에 심려를 끼쳤으니 국민이 반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웃기지 않는가.

이런 왜곡은 패전의 책임을 온전히 신하들에게 떠넘기는 뻔뻔스러운 작태로 발전한다. "전쟁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국과 영국을 너무 업신여겨서 진 것이다. 군부는 정신력만 강조하고 과학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장교들은 대세를 파악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 자들뿐이었다. 그들은 오로지 진격만 할 줄 알지 후퇴는 몰랐다." 히로히토가 아들 아키히토에게 보낸 사적인 편지에 나오는 구절이다.

히로히토는 살기 위해 진주만 기습도 도조 히데키가 자신을 속이고 저지른 것이란 거짓말도 서슴지 않았다. 1946년 9월 히로히토는 뉴욕타임스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모호하고 장황한 말로 이를 누누이 강조했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당시 외무성의 한 무관이 히로히토의 시종장 기노시타 미치오(木下道雄)에게 보낸 보고서는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로봇이 아닌 이상 (천황은) 통치자로서 책임이 있음은 명백함." 그는 그 증거로 히로히토가 개전 이유와 전쟁 준비, 함대 배치 및 그 임무 내용, 미국과의 최종 교섭이 성사될 경우 함대를 철수시키는 방안, 그리고 개전 시기 등을 이해하고 허락했으며 심지어는 휴일이란 이유로 일요일을 공격일로 정했다는 것까지 알고 있었음을 들었다. ('패배를 껴안고' 존 다우어)

이런 사기가 통할 수 있었던 것은 용이한 점령 통치를 위해 히로히토를 이용하려 한 미국의 계산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맥아더와 히로히토의 측근들은 이를 위해 A급 전범 혐의자들을 상대로 천황에게 어떤 책임도 전가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맹세하도록 했다. 잘 짜인 각본이었지만 도조 히데키가 전범 재판에서 "일본에서 천황이 모르는 것은 하나도 없다. 일본 국민 누구도 천황이 시키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은 없다"고 무심코 폭로(?)함으로써 이 사기극은 파탄 일보 직전까지 갔었다. 이런 책임 회피 DNA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하시모토 도루 패거리의 세 치 혀가 현란하게 조합해 내는 말장난으로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역사를 들여다보는 이유는 딜레탕트적 지식의 추구가 아니라 과거의 잘못을 고치고 올바른 미래를 설계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역사의 교훈이란 게 있는 것이다. 일본 극우 세력이 새겨야 할 역사의 교훈이란 바로 그들의 교주가 남긴 오욕의 발자취를 거울삼아 이성과 계몽의 밝은 세상으로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반대의 길, 광기와 무지가 지배하는 반(反)계몽의 혼돈, 만세일계(萬世一系)의 천황이 다스리는 신국(神國)으로 무한 회귀하고 있다. 이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어떻게 멈출 것인가. 암울하지만 하시모토 도루 패거리들이 정치적 타격을 받고 있다고 하니 아직은 희망이 있다. 그 희망이 만개할지 여부는 1차적으로 오는 7월 참의원 선거 결과가 말해줄 것이다. 일본 내 말 없는 다수의 양심에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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