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샛별과 멘토, 세대공감] '붕어빵' 부자 의사 유완식·유병혁 씨

"환지 있기에 의사있죠" 仁術 동행

부자라고 비단 외모만 닮은 것이 아니다. 출신 학교와 직업은 물론 직장과 전공 분야까지 같은 완전
부자라고 비단 외모만 닮은 것이 아니다. 출신 학교와 직업은 물론 직장과 전공 분야까지 같은 완전 '붕어빵'이다. 이달 14일 경북대학교병원 본관 로비에서 유완식 교수와 유병혁 씨가 스승과 제자로 마주했다. 웃는 모습도 똑 닮았다. 사진=성일권기자

아들의 인생에 아버지가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아들은 아버지가 보여준 삶을 통해 자기 인생의 방향과 이유를 발견하기도 한다. 유병혁(33) 씨는 경북대학교병원 외과 전공의 1년차인 새내기 의사다. 유 씨는 의사를 평생 직업으로 삼고 전공까지 외과로 정한 데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의 아버지는 유완식(60) 경북대학교병원 외과 교수. 이들 부자는 출신 학교는 물론 직업도 같고, 전공, 심지어 직장까지 같은 '붕어빵'이다. 부모와 자식의 연에서 스승과 제자의 끈으로 다시 엮인 이들의 같지만 다른 이야기를 들어봤다.

-의사를 직업으로 택하게 된 계기는?

▶유완식: 특별한 계기는 없다.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었을 때 그해 12월까지만 해도 의대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없었는데 대학 입시를 치르고 의대에 원서를 냈다.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 아버지께서 "의사가 돼라"고 직접적으로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서울대에 가려고 했던 내게 "네가 대구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돌려서 말했고, 그 뜻을 따랐다. 그리고 대학 합격자 발표가 나고 열흘 뒤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를 산에 모시고 오는 날이 경북대 의대 등록 마감일이었는데 마감 1시간 전에 은행에 가서 헐레벌떡 등록을 한 기억이 난다.

▶유병혁: 가정환경 때문인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보고 들은 직업이 의사였다. 의사는 직업 중의 최고 직업이라고 생각했고,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줄곧 장래희망에 '의사'라고 적었다. 하지만, 잠시 샛길로 빠져 아주대 미디어학부를 졸업했고 다시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해 의사가 됐다.

-대구에 정착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며 경북대학교병원에서 근무하게 된 계기는?

▶유완식: 왜 사람들은 모두 서울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대구에서 의대를 졸업했고 의사 생활도 대구에서 시작했다. 나는 서울을 "서울 지방"이라 부르고 서울에 갈 때도 "서울에 간다"고 말한다. 가끔 서울 환자들도 나에게 진료를 받으러 온다.

▶유병혁: 내 집이 원래 대구다. 어릴 때부터 의대를 가야 한다면 경북대 의대를 가고, 의사가 되면 경북대학교병원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시험 만점을 받아도 경북대 의대를 갈 것"이라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결국, 원래 꿈대로, 본래 둥지로 돌아온 것이다.

-아버지가 위암 분야의 대가다. 주변의 시선이 부담스럽지는 않나?

▶유병혁: 맞다. 기대를 많이 하시는 만큼 부응해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막상 외과에 들어오니 마음이 편해졌다. '1년차'라는 글자가 크게 작용한 것 같다. 아직 전공의가 된 지 석 달밖에 안 돼서 큰 기대를 안 하시는 것 같다. 나중에 내가 직접 집도를 해야 하는 시기가 되면 상황이 조금 달라질 것이라고 본다.

-예전에 의학 드라마 속 의사들은 삐삐로 '콜'을 받으며 바삐 뛰어다니더라. IT의 발달로 병원 안 연락 체계에도 큰 변화가 있을 것 같다.

▶유완식: 처음 의사 생활을 할 때 삐삐는커녕 전화도 귀한 시절이 있었다. 그때 병원 레지던트와 인턴 숙소에 전화가 한 대씩 있었다. 그때는 당직실 전화를 받는 아르바이트 학생이 항상 대기하고 있다가 "전화 왔어요!"하고 뛰어다니며 우리한테 알려주고 그랬다. 또 지금처럼 휴대전화가 없으니 병원 밖에 나가는 것은 꿈도 못 꿨다. 만약 급한 콜을 해야 하면 원내 방송으로 했기 때문에 항상 방송을 들을 수 있는 공간에 머물러야 했다.

▶유병혁: 항상 연락을 받아야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샤워할 때 휴대전화를 들고 들어갔다가 휴대전화기가 물에 젖은 적도 있다. 지금 당직실 전화는 사라졌다. 대신 4자리 숫자의 내선 번호만 누르면 바로 휴대전화로 통화할 수 있는 시스템이 생겼다. N존, W존으로 불린다. 병원 앞길, 병원 건너편 식당으로 밥 먹으러 나가도 내선 전화를 받을 수 있다. 통신 기술의 발달로 예전 의사들에 비해 활동 반경이 넓어진 셈이다. 예전에 휴일에 노보텔에 갔었는데 병원에서 내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대구 노보텔에서 경북대학교병원까지 거리는 1㎞다.)

-지금과 과거의 의사 조직 문화가 어떻게 달라졌는가?

▶유완식: 의사 조직은 군대보다 기강이 더 세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상하 관계가 확실해서 선배 말에 무조건 복종해야 했다. 훈련도 아주 확실하게 받았다. 잠자고 밥 먹을 시간도 없어 옛날 선배들이 외과는 '동물의 왕국'이라고 말했다. 몸이 고돼 틈만 나면 먹어야 하고, 틈만 나면 자야 하는 일이어서 이렇게 불렀다. 전공의 시절 어떤 친구는 너무 피곤해 수술실에서 꾸벅꾸벅 조는 경우도 있었다.

▶유병혁: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 상명하복, 도제식 교육을 강조했다면 지금은 아니다. 수평적 구조까지는 아니지만 내 의견을 말할 기회도 많고, 전공의에게도 어느 정도의 충분한 휴식 시간을 보장하고 있어 합리적이라고 본다. '민주화'가 많이 됐다.

-기억에 남는 환자는?

▶유완식: 35년 전 내가 전공의 1년차였을 때 응급실에 숨이 멈춘 상태로 도착했던 환자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울산 조선소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다. 응급실 문 앞에서 숨을 쉬었던 사람이 안에 들어왔을 땐 숨이 멈춰 있었다. 심폐소생술을 하면서 수술실로 갔고 결국 수술을 해서 살았다. 그 환자는 십이지장궤양에서 피가 나서 수술했었는데 나중에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알고 보니 내가 심폐소생술을 너무 세게 해서 갈비뼈가 두 개 부러졌더라. (웃음)

▶유병혁: 아직 외과 전공의가 된 지 석 달밖에 안 돼 아버지 같은 경험이 별로 없다. 앞으로 평생 의사 생활을 하다 보면 기억에 남는 환자가 많이 생길 것 같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유완식(60)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경북대학교 암연구소장 역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진료심사평가위원회 중앙심사위원회 심사위원 역임

칠곡경북대학교병원장 역임

대한위암학회 회장 역임

현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유병혁(33)

대구 협성고등학교 졸업

아주대학교 미디어학부 졸업

경북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졸업

현 경북대학교병원 외과 전공의 1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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