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돈된 헤어, 말끔한 양복, 이를 돋보이게 곧추세운 넥타이, 쿨한 스킨 냄새 등.
아침이면 생활전선에 뛰어드는 직장인의 나름 전투태세이다. 기세만큼은 백전백승을 할 듯하나 저녁이면 백전백패의 몰골로 귀가한다. 다시 사기를 올리고 전의를 가다듬을 힘을 불어 넣어주는 것이 아내와 아이들. 항상 든든한 이 지원군은 갖은 전투로 쇠약해진 가장을 위해 '여보, 아빠, 힘내세요!'라는 이벤트로 성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참으로 소중하고 귀하디 귀한 존재가 바로 가족이다. 이들의 웃음 한자락이면 가장의 피곤과 근심, 걱정은 말끔히 사라진다. 내일을 향한 의욕으로 가득 찬다. 당연히 가장으로서 받기만 할 수는 없는 일. 어느 CF송 '온~가족이 다 함께' 가사처럼 즐겁고 행복한 이벤트를 구상하게 된다.
입대 순간부터 제대 날짜를 헤아리는 군인의 심정으로 주말을 기다리며 캠핑장비를 옮겨 싣느라 엘리베이터를 몇십 번 오르내린다. 옆집 아줌마와 경비아저씨의 의아한 눈초리와 '이사 가십니까?'라는 황당한 멘트도 가장인 나의 전의를 상실시킬 순 없다.
드디어 출발이다. 집을 나서는 순간, 조수석에서 꾸벅꾸벅 조는 아내, 캠핑장비 때문에 좁은 뒷좌석에서 푸념을 늘어놓다 잠들어 버린 아이들. 모두가 잠들어 버린 차를 몰며 나는 무언의 대화를 시도한다. 불편하게 잠든 아내의 옆모습에서 나와 그다지 다르지 않았음을 보았다. 작게 들려오는 코골이 소리에서 이학원 저학원 쫓아다니는 아이들의 고단함을 읽는다.
아직은 온전히 내 품 안에서 오롯이 인생 1막의 주인공이어야 할 아이들에게 너무도 현실적 판단과 결과를 요구하진 않았는지. 제 발등에 떨어진 불 끄느라 가녀린 줄을 타듯 마음 졸이며 지켜보던 아내의 눈망울을 무심히 흘려버리지는 않았던지. 캠핑장 가는 내내 글 없는 반성문을 마음으로 써내려 간다.
캠핑장에 도착하자마자 내 아이들에게 기억될 한순간을 위해 열심히 팩 망치를 휘두른다. 카탈로그에 나온 멋진 각 잡힌 모습은 아닐지라도 기공부터 준공까지 가장인 나의 힘만으로 소중한 가족들이 머물 집 한 채 지어놓고 나니 뿌듯하다. 너무나 대견스러워 눈을 맞추려고 뒤돌아봐도 아내와 아이들은 도무지 관심이 없다.
부글부글 끓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다음 진도를 나간다. 참을 인(忍)자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는데, 뭐 이런 것 가지고 성질을 내서야 되겠는가. 가방 몇 개를 대충 차에서 내려놓고는 아이들에게 갖다 놓으라고 시키고, 아내에게는 '밥 안 줄건가' 하면서 고프지도 않은 배를 잡고 소심한 복수를 시작한다. 흘깃 올려다보는 아내의 눈빛에서 '이런, 화상아'를 읽었지만 애써 못 본 채 지나간다.
누군가와 함께 무언가를 하고자 할 때에는 상대방이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 있다. 캠핑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아내와 아이들을 사랑해서 한다는 것을 알아줄 때까지 나의 퍼포먼스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나만의 감성캠핑, 가장의 감성캠핑은 늘 이렇게 시작된다. 캠핑은 이처럼 자잘한 이유에서 느끼는 감성 때문에 간다. 볼에 스치는 바람에서,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햇살 한 줌에서, 텐트를 때리는 빗소리에서 캠핑의 멋을 느낀다.
또 카리스마 넘치는 묵직한 애비의 부정에서, 아이들을 따라 눈을 움직이는 어미의 모정에서, 약간의 코맹맹이 소리로 늘어놓는 혼잣말 같은 아내의 투정에서, 이거 할래, 저거 할래 쉼 없는 아이들의 열정에서 캠핑의 맛을 알아 간다.
남들은 멀쩡한 집 놔두고 바리바리 짐 싸서 한데서 밥 먹고 잠자는 '사서 고생'을 왜 하느냐고 하지만, 나는 오늘도 캠핑 갈 준비를 하면서 주말을 기다린다.
박종운(네이버 카페 '대출대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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