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水鄕 안동'을 리모델링하다] ③강, 유학적 삶을 녹이다

낙동 물길 곳곳에 유학자 詩'철학…'유교 가치'를 관광상품으로

왕모산성 정상에서 본 단천
왕모산성 정상에서 본 단천'원천 : 낙동강 물길이 안동댐으로 가로막히고 물이 들어차면서 상전이 벽해되고,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하지만 낙동강 물길은 여전히 문학과 민족혼을 고스란히 품고 흐른다. 퇴계를 비롯한 숱한 유학자들의 철학적 삶이 녹아 흐른다. 사진은 왕모산성에서 내려다 본 단천과 원천마을.
월천서당=세계유교선비문화공원과 한국문화테마파크가 들어서는 안동시 도산면 동부리 다래마을에는 퇴계선생과 편지로 유학적 철학과 삶을 고민했던 월천 조목선생의 유일한 흔적 월천서당이 홀로 서있다.
월천서당=세계유교선비문화공원과 한국문화테마파크가 들어서는 안동시 도산면 동부리 다래마을에는 퇴계선생과 편지로 유학적 철학과 삶을 고민했던 월천 조목선생의 유일한 흔적 월천서당이 홀로 서있다.
육사 문학관=육사 문학관안동시 도산면 원천리 이육사선생의 마을에 들어선 육사문학관이 3대문화권 전략사업으로 지정돼 시설 확충과 시림공원 등 다양한 시설, 원천마을 복원 등으로 새롭게 탈바꿈한다.
육사 문학관=육사 문학관안동시 도산면 원천리 이육사선생의 마을에 들어선 육사문학관이 3대문화권 전략사업으로 지정돼 시설 확충과 시림공원 등 다양한 시설, 원천마을 복원 등으로 새롭게 탈바꿈한다.

낙동강을 따라 형성된 35번 국도는 콘텐츠 로드다. 안동시내에서 낙동강이 굽이쳐 흐르는 청량산까지 50㎞ 구간의 마을마다 문화유적 아닌 곳이 없다.

유일재 고택, 광산 김씨 예안파의 600년 세거지인 군자마을, 도산서원, 육사문학관, 퇴계종택이 모두 이 길을 따라 들어서 있다.

특히 퇴계가 한국적 주자학을 완성한 후 낙동강은 철학과 문학과 역사의 강이 됐다.

낙동강 물길이 안동댐으로 가로막히고 물이 들어차면서 상전이 벽해되고,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하지만, 낙동강 물길은 여전히 문학과 민족혼을 고스란히 품고 흐른다. 퇴계를 비롯한 숱한 유학자들의 철학적 삶이 녹아 흐른다.

이제 강 아래로 잠겨버린 마을과 사람 떠나 텅 빈 땅에서 전해 오는 숱한 이야기들이 '생태'와 '관광'이라는 옷을 갈아입고 있다.

◆낙강산수에 취해 시를 남기다

35번 국도를 따라 안동시 와룡, 도산 방면으로 달려 한국국학진흥원과 경북도 산림과학박물관, 도산서원을 지나 고갯길을 넘어 도산면사무소 앞에서 오른쪽 산 아래로 난 작은 시골 포장길을 따라 돌고 돌면 나지막한 산 아래 퇴계종택이 자리 잡고 있다. 뒤편에는 '퇴계 공원'이 들어서 퇴계 선생에 대한 모든 것을 한눈으로 살펴볼 수 있다.

퇴계는 34세에 관직에 오른 후 선조 3년인 1570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2천270 수의 시와 3천300여 통의 편지를 남겼다. 그중에서 낙동강의 산수에 취해 적은 시 또한 적지않다.

"청산(靑山)은 어찌하여 만고에 푸르고/ 유수(流水)는 어찌하여 주야로 흐르는고/ 우리도 그치지 말고 만고청산 하리라"고 읊었던 '도산십이곡'을 비롯해 "청량산 육육봉(六六峯'12봉우리)을 아는 이 나와 백구(흰 기러기)/ 백구야 날 속이랴 못 믿을 손 도화(복사꽃)로다/ 도화야 물 따라가지 마라 어주자(어부) 알까 하노라"라 읊었던 '청량산가'에 이르기까지 낙동강은 퇴계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퇴계가 생전에 '고삐 잡고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고 표현했던 '퇴계 예던길'. 안동시가 조성한 퇴계 예던길 생태탐방로는 청량산과 마주하고 있는 건지산의 일부인 단천교~전망대~농암종택~고산정 3㎞의 구간을 오솔길로 만든 것이다.

예던길은 퇴계의 '도산 12곡' 가운데 9곡에 나오는 시 '고인도 날 못보고 나도 고인 못 보니 / 고인을 못 뵈도 예던길 앞에 있네/ 예던길 앞에 있으니 아니 녀고 어쩔고' 에서 따온 말이다.

낙동강 1천300리 중 가장 경치가 아름답다는 이곳은 이른바 사람들에게 '시심의 길'로 불린다. 이곳을 벗어난 낙동강은 그저 밋밋하게 흐른다고 할 만큼 이곳의 산수는 수려한 풍광을 자랑한다.

맑은 날이면 하늘은 푸르고 그 푸른 하늘을 담고 있는 강물은 시리도록 차갑다. 오솔길에는 관란헌, 백운동, 미천장담, 경암, 한속담, 월명담, 일동, 고산 등 이곳의 산수 및 지명이 등장하는 퇴계의 시가 숲 속 곳곳에 새겨져 있다. 이 가운데 고산정은 평소 금난수를 아낀 퇴계가 자주 찾아와 빼어난 경치를 즐기던 곳이다.

◆유학적 삶에 관광 옷 입히다

퇴계는 여러 제자 가운데 특히 월천 조목을 아꼈다. 60세 이후 거의 3일에 두 편씩 편지를 썼다. 조목에게는 171편을 보냈다. 대표 제자라고 알려진 한강 정구와 서애 류성룡에게 각각 5, 6편을 보낸 것에 비하면 자주 편지를 보냈다. 도산서원에 퇴계와 월천 조목만이 배향된 역사적 배경을 살필 수 있는 것 같다.

3대 문화권사업의 중심지역이 도산면 동부리 다래마을이다. 월천(다래)의 경치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아름답다. 특히 밤 풍경에 감탄한 스승과 제자는 낙동강 다래의 산수에 감탄해 시 한 수를 주고받았다.

"도산서당 달 밝으니 월천서당도 달이 밝고/ 오늘밤 바람 맑더니 어제저녁도 맑았었네/ 또 달리 한결같이 광풍제월 한 곳 있으리니/ 우리가 어디서 '明' '誠'을 징험할까" 스승이 먼저 시 한 수를 지으니 제자인 월천이 화답했다.

"부용봉 푸름은 도산봉 푸름에 접하고/ 풍월담 맑은 물은 퇴계수 맑은 물에 잇닿았네/ 진리의 근원을 찾아 나서기에는 정말 좋은 곳이나/ 마음에 깨달아 '明' '誠'을 말하지 못해 부끄럽구나"

월천 조목의 땅 다래마을을 중심으로 성현들의 유학적 삶을 되살리고 관광의 옷을 입히는 사업들이 추진되고 있다. 3대문화권 사업 가운데 선도사업인 '세계 유교'선비문화공원'과 '한국문화테마파크' 조성사업이 그것.

이 사업들은 퇴계 선생을 비롯해 안동지역 곳곳에 스며 있는 유학자'성현들의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그들의 삶의 철학을 현대적으로 계승해 물질과 욕구가 지배하는 현대사회를 경계하려는 의도다.

또 유교문화를 세계화하는 한편, 선비의 삶과 선비 풍류 체험, 예던길 걷기 등의 사업을 통해 유교적 가치의 현대적 계승과 세계질서 재편에 따른 비전을 제시하게 된다.

안동대 한국문화산업전문대학원 유동환(창조산업연구소장) 교수는 "세계는 신자유주의 경제질서에 대한 반성과 정치'경제질서 혼란기 이후를 대비하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형성하고 있다.

이에 따라 새로운 유교질서 및 아시아적 가치의 부활 등 물질사회를 기본으로 떠받쳐온 질서가 무너지는 세계 현실의 재편 속에서 유교적 가치에 대한 관심이 급부상하고 있는 것"이라 했다.

◆문학'민족혼이 흐른다

퇴계 종택을 지나 고갯길을 올라 보면 민족 저항시인 이육사의 혼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육사 선생의 고향인 원천마을에는 육사문학관이 들어서 선생의 시혼을 후대에 알리고 있다.

왕모산성 갈선대(칼선대라고도 불린다)에 오르면 원천이 한눈에 들어와 육사 선생의 나라 잃은 울분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산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칼을 세워둔 모습의 갈선대는 육사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절정'의 시상지로 유명하다.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 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육사는 자신이 태어난 원촌마을이 아득히 바라다보이는 이곳에 올라 나라 잃은 슬픔과 울분을 시로 표현했다. 갈선대 바로 밑 호젓한 마을은 단천(丹川)이다.

도산구곡 중 여섯 번째인 천사곡과 일곱 번째인 단사곡 물길이 태극모양을 하며 마을을 휘돌아 삼남으로 굽이굽이 흘러간다.

육사의 마을 원촌에도 새로운 관광 패러다임이 꿈틀대고 있다. 안동시 도산면 육사문학관을 중심으로 한 '유림문학유토피아'가 오는 2017년까지 조성된다.

기존의 이육사 문학관 시설을 확충하고 육사 선생의 고향인 원촌마을에 수몰로 사라진 종택과 고택 등 9채의 건물을 복원해 마을을 되살린다. 또 문학관 앞쪽으로 연꽃단지를 꾸미고 뒷산에 시림공원과 문학 놀이터 등을 조성한다.

안동시 전략사업팀 김동명 3대문화권담당은 "이 사업은 3대문화권 전략사업의 하나로 사업이 완료되면 지역 고유의 문학지원시설을 관광 특화하게 된다"며 "문학인을 위한 숙박'휴양시설로 활용되고 문학인과 관광객, 지역주민이 하나 되는 관광시설로 육사 선생의 민족혼을 엿보는 장소가 될 것"이라 했다.

안동'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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