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잠에서 깨어나는 21세기 실크로드] <제3부> 11.카파토키아의 비밀

중세의 종교 피란처, 지금은 동굴식 호텔…같은 장소·다른 역사

페르시아 제국의 황제 다리우스 1세는 자신의 중앙집권적 통치를 유지하기 위해 기원전 5세기경 '왕의 길'을 건설했다. 이란의 서쪽 지방에서 오늘날 터키 에페소 지역까지 연결되는 장장 2천700㎞의 도로망을 건설했다. 그 후 실크로드의 일부로 발전하여 지금도 존재하고 있는 이 길은 상업의 발달을 가져와 제국의 번영에 도움이 되었다. 페르시아는 효과적인 통신 및 교통을 위해 역마제도를 최초로 실시했다. 총 111개의 역관을 설치하고 모두 종주하는 데는 도보로 약 80일이 걸렸다고 한다. 역관에는 언제나 말을 탈 준비가 되어 있어 모든 소식이 15일 만에 제국 전역에 퍼질 수 있었다. 오늘날은 이란에서 육로로 터키를 방문할 경우 국경을 넘어야 하지만 그 옛날에는 잘 정비된 이 '왕의 길'을 거쳐서 왕래했었다.

해발 5,137m로 터키에서 가장 높은 산인 아라라트산을 바라보며 터키 동부지역으로 들어오면 도로는 그물망처럼 잘 정돈되어 있다. 로마로 향하는 실크로드를 따라 서쪽으로 길을 재촉한다. 길은 그 후에도 역사의 부침에 따라 여러 갈래로 생겨났다. 그런데 터키의 교통안내 지도를 보면 동서로 연결된 도로 중에서 왕의 길을 비롯한 많은 노선이 한 곳을 경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곳이 카파토키아 지역이다. 전략적 통로를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랜 역사의 격동을 고스란히 겪으며 그 질곡의 세월을 이겨낸 곳이다.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에도 등장할 정도로 자연과 역사가 어우러져 터키 관광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됐다. 300만 년 전부터 화산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나 용암으로 형성된 응회암층이 긴 세월 비바람에 침식되어 지금과 같은 기암괴석군이 형성됐다. 이들을 바라보면 우주의 요정이 나올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영화 '스타워즈'의 촬영지가 되기도 했다.

그러면 이곳에 처음 지하 동굴을 파서 인간의 삶터로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기독교도들의 은신처로 만들었다고도 볼 수 있으나 역사가들은 동굴건축이 생긴 배경이 오랜 전란의 영향이라는 것이다. 카파토키아는 실크로드가 통과하는 길목으로 대상행렬이 끝없이 이어졌던 곳이다. 이 핵심 교통로를 차지하려는 쟁탈전은 계속됐고 고대 히타이트 시대부터 시작되어 페르시아, 로마 제국 등으로 주인이 자주 바뀌었다. 중세 이후에는 비잔틴 제국과 아랍, 투르크인들이 치열하게 싸웠다. 따라서 굴을 깊이 뚫어 주민들의 안전을 위한 필연적 장소가 되었다. 그후 기독교 교인들이 찾아들어 신앙과 포교의 장소가 된다. 초기 기독교의 박해시기에 종교탄압을 피해 많은 사람들이 숨어들어 도시를 형성하게 되었다. 데린구유 같은 곳에서는 지하 동굴을 연결하여 대형 주거 공간을 만들어 생활했다. 이슬람세력의 압박으로 최대 7만 이상이 살았다는 거대한 지하 도시가 되기도 했다. 13, 14세기 몽골군의 침입과 티무르의 정복 등으로 기독교도들은 흩어지고 흔적만 남아있다. 그 일대의 규모는 5개의 작은 도시가 있고 각 지역별로 많은 지하교회와 유적들이 있다. 이 동굴도시들은 부근에 이슬람 모스크들이 들어서고 1950년대까지 지역민들의 주거지로 사용됐다. 지금도 몇 군데에는 응회암 동굴을 개조한 펜션이나 동굴 호텔들이 성업 중이다.

이곳에는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기 위한 부수적인 관광자원도 많다 그중에서 소금 호수는 널리 알려진 곳이다. 넓이가 1천500㎢로 터키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이다. 원래 바다였다가 물이 빠지면서 생긴 호수인데 여름에 물이 증발하면서 소금밭으로 남아 새하얗게 된다. 부근 정제공장에서 해마다 30만t씩 소금을 걸러낸다고 한다. 세계 각지에서 카파토키아를 찾아드는 관광객들은 열기구에 올라 공중에서 이 일대를 감상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열기구 사고 소식도 들린다. 카파토키아는 신비한 자연현상이 형태를 만들었고 종교적 성지가 되었다. 그러나 삶의 터전을 둘러싼 인간의 끈질긴 역사적 적응력을 보여주는 명소로서 크나큰 가치와 의미는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역사와 자연의 중요성을 인정받아 198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카파토키아는 지금도 알 수 없는 미지의 공간으로 지상과 지하에는 숱한 신비와 불가사의가 비장되어 있다.

한반도 남한 면적의 약 8배나 되는 터키를 육로로 답사하면서 넓은 자연경관을 보며 감상에 빠지기도 한다. 한없이 펼쳐진 목초지와 밀밭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 부존하는 수많은 지하자원을 생각하기도 한다. 돌궐족의 후예로서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영광을 간직한 터키는 대국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가능성을 엿본다.

글'사진: 박순국(전 매일신문 편집위원) sijen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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