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세이 산책] 껌의 철학

부모가 자식의 거울이라면 자식 또한 부모의 거울이다. 자식이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좋지 않은 습관이면 더욱 그러하다.

나는 대체로 음식을 입 안에 오래 두지 못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건강을 위해서는 물이나 우유도 씹어 먹어야 하며 음식물은 최소 50번 이상 씹어야 한다는 의사의 말은 고문이다. 당연히 껌도 오래 씹어본 일이 없다. 어쩌다 씹게 되면 단물이 제거되는 선에서 뱉게 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옆 사람이 오래 씹고 있는 것도 불편할 때가 있다. 신혼 때 아직 뱉을 의사가 없는 남편에게 휴지를 내밀었다가 "민주국가에서 껌도 내 마음대로 못 씹느냐"는 항의를 받아 머쓱했던 적이 있다.

생활습관이 삶의 가치관 형성에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게 된 것도 자식을 통해서이다. 내 아이들 역시 나를 닮아 음식을 공들여 씹기보다는 마시거나 삼키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껌 하나도 오래 씹는 법이 없다. 껌이 왜 껌이겠는가? 꼭꼭 씹으라고 껌이 아니겠는가?

아이들은 하나같이 꼭꼭 씹는 습관을 익히지 못했다. 껌이 주는 메시지, 인내와 끈기를 체득하지 못한 것이다. 게으른 딸은 양말 신기 번거로워서 아이스크림 사러 가는 것을 포기하고, 산만한 아들은 시험 칠 때 뒷면에 있는 문제는 보지도 못한 채 반 토막 점수를 받아왔다. 저학년 때는 '73-18=( )'이라는 산수문제에서 생각하기 귀찮은 나머지 8에서 3을 빼고 70에서 10을 빼고 만 적도 있었다. 매사를 주스를 마시듯이 또는 아이스크림 핥듯이 편한 대로만 처리하여 삶에서 필요한 갈등과 고민이 배어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드디어 할아버지 세대의'질겅질겅 씹기'를 주목하게 되었다.'껌의 철학'이다. 그들은 껌이 생기면 씹고 또 씹고, 하루 종일 씹고도 아쉬워서 상 밑에 붙여 두었다가 이튿날 다시 떼어서 씹었다. 그들은 껌을 소유했고, 관리했다. 어려서부터 껌을 통해 삶이 결코 만만치 않음도 눈치 챘다. 삶이란 마시거나 삼키는 것이 아니라 정성껏 꼭꼭 씹어야 함을 껌을 통해 체득했던 것이다. 그것이 저력이 되어 '굳세어라 금순아'처럼 1'4후퇴 때는 홀홀단신으로 국제시장 장사치가 되어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로 동생을 찾아나설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오늘 아침 빨랫감을 챙기다가 아들의 주머니에서 휴지에 싼 껌을 발견했다. 스스로 버린 것인지 여자 친구의 종용에 의한 것인지 고개를 갸웃거리다 보니 미소가 지어졌다."민주국가에서 껌도 마음대로 못 씹느냐"던 그의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듯했기 때문이다.

小珍/에세이 아카데미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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