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의 종군기자였던 크리스 헤지스는 자신의 저서 '당신도 전쟁을 알아야 한다(원제:What Every Person Should Know about War)를 통해 전쟁의 엄혹한 현실을 고발했다. 실전의 참혹함은 전쟁에 참여한 당사자들에게 엄청난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를 남기게 되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끔찍한 흔적을 인간사 도처에 남긴다고 한다. 20세기 가장 치열하고 참혹한 전쟁을 경험한 우리에게 종군 기자의 경험은 지극한 현실로 받아들여진다. 아직도 전쟁으로 헤어진 피붙이를 그리워하며 가슴 치는 이들이 있는 한국 사회는 여전히 전쟁을 치루고 있다. 고통과 공포의 콜라주가 현재진행형으로 뿌리박고 있는 것이다.
당연하겠지만 이산의 세월이 길어지면서 만남을 기약할 수 있는 생존자는 줄어들고 있다. 1988년부터 통일부에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한 사람은 12만8천808명이었는데 현재 반을 조금 넘는 숫자만이 생존해 있다. 생존자의 대부분도 70대 이상이며 매년 3천800명 정도가 세상을 떠나고 있기 때문에 무심하게 세월을 보내다 보면 이산가족이라는 말 자체도 의미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한국대중음악을 강의할 때 빼놓지 않는 챕터가 한국전쟁과 관련된 부분이다. 한국대중음악에 남아있는 전쟁의 흔적은 평화나 반전에 대한 메시지보다 이산의 아픔을 담은 경우가 많다.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에게 당시의 노래는 진부한 청승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의미를 전달하고 노래를 함께 부르면 알 수 없는 뭉클함을 호소한다. 특히 이즈츠 카즈유키 감독의 영화 '박치기'와 최근 개봉한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에 삽입된 '임진강'을 소개하고 나면 블로그와 SNS에 리뷰가 이어진다. 우리만 이산의 고통을 겪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민중들도 마찬가지의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인지하기 때문이다.
바람 찬 흥남부두를 떠나 영도다리 위에서 금순이를 그리워하는 마음이나 뭇새들 자유로이 넘나드는 임진강을 덧없이 바라보는 마음이나 마찬가지다. 어느 쪽이건 우리만이 피해자라는 생각에서 이산의 문제를 인식하는 것이 이산의 당사자들에게 얼마나 원망스럽고 불쾌한 일이겠나. 한국전쟁이 터진 지 63년, 정전협정이 있은 지 60년이 흘렀다. 또 온 국민이 밤새워 애태웠던 'KBS생방송-이산가족을 찾습니다'가 있은 지도 30년이 흘렀다. 이제는 초로를 훌쩍 넘긴 국제시장 장사치기에게 굳세게 살아 온 금순이 얼굴은 보게 해 줘야하지 않을까. 두 노인네 얼싸안고 춤추는 모습 좀 보자. 또 협동벌 이삭바다를 지나 고향땅 남쪽으로 흐르는 임진강에서 원한은 거둬 내 주자.
대중음악평론가 museero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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