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덤 스미스에게서 발원돼 20세기 초까지 유행한 고전파 경제학의 키워드는 말하자면 'let it be'(가만 내버려둬라)라고 표현할 수 있다. 시장은 자기 조절 메커니즘이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손'을 훼방하지 말고 내버려두면 생산과 소득, 지출이 '순환적 흐름'을 타서 모든 재화의 수요와 공급을 하나의 균형점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산업 부문에서 가격과 이윤이 상승해 자본이 모여들 경우 초기에는 애초에 기대한 가격과 이윤은 유지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본 간의 경쟁은 치열해지고 그 부문의 가격과 이윤은 떨어진다. 그래서 자본은 다른 부문으로 이동한다. 이렇게 해서 수요와 공급 사이에 나타나는 그 어떤 불균형도 저절로 바로잡힌다. 실업과 경기 침체도 마찬가지다. 고통스러워도 참고 견디면 '장기적으로' 반드시 노동의 수요와 공급의 균형 상태 즉 완전고용은 실현되고야 만다!
이런 교리에 처음 반기를 든 학자가 케인스다. 설사 그런 균형 상태가 온다 해도 실업과 빈곤의 참극(慘劇)을 피하기에는 너무 늦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우리 모두는 시체다"는 그의 유명한 말은 이를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장기적으로 균형의 도래를 기다리다 죽기보다는 '단기적으로' 정부가 개입해 실업과 빈곤을 해소하는 것이 옳다는 얘기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를 놓고 자칭 진보 쪽에서 비판이 거세다. 그 비판 논리의 하나는 '공개'는 정상회담의 기밀성과 상호 신뢰의 원칙을 깨버린 선례를 남긴 것으로, 한국은 '입이 가벼운' 국가로 찍혀 향후 다른 국가들이 한국과의 정상회담에서 내밀한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케인스식 표현을 빌리자면 "장기적으로 한국 외교는 시체다"라고 할 수 있겠다. 과연 그럴까.
설사 그렇다 쳐도 지금 대한민국에 더 중요한 것은 그런 장기적 문제가 아니라 대통령이 절대 해서는 안 될 영토선 포기 발언의 진위 확인이라는 '단기적' 과제다. 그것은 국민이 그 대통령을 계승한 정치 세력에 대한 지지 여부를 판단하는 데 결정적인 준거가 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해상 영토선은 국가 수호의 최고 책임자에 의해 '시체'가 될 뻔했다. 장기적 외교 손실이란 희한한 논리를 앞세워 대통령의 배역(背逆) 사실을 봉인해 두자는 것은 국민의 눈을 가리겠다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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