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독립 만세 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분인 만해 한용운(1879~1944)의 항일 정신은 유명하다. 글로써, 때론 행동으로 민족의 자긍심과 독립심을 고취시켰다. 기개 또한 담대, 만세 운동을 벌인 직후 비밀 모임에서 상당수 대표자가 체포돼 고문당할 것을 두려워하자 이들에게 화장실에 있던 똥물을 퍼다가 끼얹은 일도 있다.
만세 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3년간 옥고를 치르면서 그 유명한 '조선독립의 서'를 지었다. 이 명문은 옥바라지를 하던 상좌 춘성 스님을 통해 상해 임시정부로 보내져 독립신문에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만해는 일제와 조선총독부에 대한 저항 정신으로 집도 조선총독부 반대 방향인 북향으로 지었고, 식량 배급도 거부했다고 한다. 친하게 지내다가 친일로 변절한 최남선이 한용운과 가까운 사이임을 자처하자, 한용운은 "최남선이라는 사람은 (마음속으로) 이미 장례를 치러서 난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대처승 운동을 주도해 스님에게도 결혼할 자격과 권리를 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1944년 오늘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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