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안상학의 시와 함께] 애인아 놀자

최광임(1967~)

장맛비 주춤한 사이로 저녁이 온다

낮 동안 빗속에 갇혀 있던 개구쟁이 두엇

고샅으로 나와 고립된 정적을 흔든다

애 인 아 노 올 자

호방한 소리로 공중을 흔들고 다니는 뻐꾸기처럼

턱을 아래로 당기고 배 힘을 꽈악 준 사내아이 소리

애인아는 대답이 없다, 보송보송 흰 빨래 같은

거리와 거미줄 위 물방울의 정적을 가르는 애인아

그 흔한 까치조차 깍깍거리지 않는

저물녘, 쿵 쿵 태초의 소리다

그러고 보니 장맛비 잠시 개인 박명(薄明)의 거리에서

애인이라 불러도 흠 되지 않을 사람

만나고 싶은 시간이다 겹겹이 빗나가는 눈빛과

죄 없이 목소리 낮추거나 높여야 하는 시간 말고

어스름을 휘어잡고 흔드는 스스럼없는 누구

자꾸만 빠진 이 사이로 새어나오는

애 인 아 노 올 자

-계간 《불교문예》(2006년 겨울호)

어떤 소리가 들려온다. 귀에서 들리는 것이 마음에서는 변환되어 들리는 경우가 있다. 마음에서 간절하게 듣고 싶은 소리다. 개구쟁이 소년이 친구 이름을 부르고 있는데 '애인'으로 들린다. 친구 이름이 '애인'과 닮거나 말거나 중요하지 않다. 내 마음이 지금 애인과 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것이다.

새벽닭 소리를 들어보라. '꼬끼오'가 맞나? 그 소리에 사람 이름을 대입해서 들어보라. '개똥아'도 좋고 '빵순아'도 좋다. 누군가를 부른다고 생각하며 들어보라. 그럼 그렇게 들릴 것이다. 실험해 보라. 검은등뻐꾸기 소리를 들어보라. 어떤 사람은 '홀 딱 벗 고'로 듣지만 음수만 맞추면 다른 내용으로도 충분히 소화가 된다. 마음이 가면 소리도 그렇게 따라가는 거다. 예를 들어 '보 고 싶 다'로 들어보라. 그렇게 들릴 것이다.

소리가 시가 되는 경우가 여럿 있다. 마음이 간절하면 소리가 절실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이 시의 간절함은 보는 바와 같다.

시인 artand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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